[말레이 여객기 피격] 점점 굳어지는 우크라 반군 소행… 궁지 몰리는 러시아

입력 2014-07-21 04:06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사건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 소행으로 굳어지면서 러시아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를 국제사회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러시아가 ‘외교적 왕따’를 당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친러 반군 ‘테러단체’ 규정, 짙어진 러시아와의 연관성=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프란스 팀머만스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만나 “친러 반군은 국제 테러단체”라며 “테러리스트는 반드시 재판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팀머만스 장관도 “격추를 시킨 자들뿐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한 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반군이 러시아로부터 대공미사일 조작법을 배웠다는 증거를 미국이 이미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필립 브리드러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이 지난달 30일 “반군이 러시아에 차량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 부대 운용법을 교육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발렌틴 날리바이첸코 국가안보국장은 기자회견에서 반군 감청자료를 분석한 결과 “(격추에 사용된) 부크 미사일 부대원들은 러시아 군인이었다는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각국의 압박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의회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추진 중이다. 크리스 머피 미 상원 유럽소위원회 위원장은 주요 상원의원을 두루 만나 새로운 제재 법안 제정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유럽연합(EU)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선데이타임스 기고문에서 러시아를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며 “유럽은 러시아보다 강한 경제를 바탕으로 국제사회 질서와 평화 수호를 위한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을 불허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호주는 11월 자국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푸틴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조사 접근 방해 등으로 난항=러시아도 국제조사에 응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테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없다. 당신이 정말로 도울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다. 반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경고했다. 독일과 호주, 뉴질랜드 등도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친러 반군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반군은 계속 현장을 통제하면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조사단의 접근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이 현장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 이는 국제범죄”라고 비난했지만, 반군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반군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안드레이 푸르긴 제1부총리는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즉시 국제조사단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정부군에 휴전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