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현지시간) 기자가 찾은 필리핀 마닐라 'Open Rainbow Children Center'(열린 무지개 아동센터). 센터장인 김순희(59·마닐라 평강교회) 권사는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고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사는 코피노(Kopino)들을 키우고 있었다. 코피노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Ph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이 현지에서 필리핀 여성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다.
“제가 남편을 따라 22년 전 필리핀에 왔을 때 코피노는 1000∼2000여명으로 파악됐는데, 지금은 3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베트남에서 심각한 문제가 됐던 ‘라이따이한’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필리핀에서 ‘코피노’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7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코피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센터는 3년 전 필리핀 단기선교를 왔다가 코피노 실태를 알게 된 경기도 양평 산음교회 김태성 목사와 가평 열림교회 원종문 목사 등이 보내준 헌금으로 설립됐다. 두 목사는 월세와 생활비, 도우미 월급 등으로 매달 120만원을, 건설업을 하는 김 권사의 남편은 매달 8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부산지역 성결교회들도 선교비를 보탠다. 후원 교회들은 공부에 흥미를 가진 코피노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유학을 시킬 방침이다.
현지 교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코피노들은 유학이나 여행, 사업차 필리핀에 머물던 한국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뒤 버려졌다. 코피노가 급증한 것은 가톨릭을 믿는 필리핀 여성들이 낙태를 기피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책임지지 않는 파렴치한 한국 남성들 때문이다.
페이(가명·12)양은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아빠는 도망친 상태였다. 아빠는 필리핀 유학을 온 한국인 고교생이었다. 그는 한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소식을 끊고 말았다. 페이양의 엄마는 뒷감당이 두려워 배를 세게 때리고 독한 술을 마시는 등 유산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지금은 거리에 차린 허름한 좌판이 모녀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센터에서 생활하는 정수영(가명·19·여) 유원(가명·15) 남매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빠는 몇 년 함께 살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수영이는 열심히 공부해 올해 어엿한 대학생이 됐고 호텔매니저를 꿈꾸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유원이는 설계사를 희망하고 있다.
코피노를 낳은 여성들의 직업은 술집여성부터 가정부, 사무직 등 다양하다. 김 권사는 “아이 아빠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어 양육비 소송을 내기도 쉽지 않다”며 “한국 아빠들에게 이들은 잊고 싶은 ‘불장난’의 대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이들에게 ‘미세스 킴’이라고 불린다는 김 권사는 코피노 일이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지만 항상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며칠 전엔 코피노를 임신한 소피(가명·18)의 출산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코피노에 대한 한국인의 낮은 인식도 김 권사를 허탈하게 한다. 한국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센터를 방문하곤 했지만 대부분 홍보사진만 찍고 가기 일쑤여서 실망감만 커졌다.
일본과 비교해도 코피노에 대한 한국인의 책임감은 낙제 수준이다. 일본은 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낳은 '자피노'(Japino)를 위해 지원 활동을 활발하게 벌인다. '일본·필리핀 어린이 네트워크'는 지난 20년 간 자피노 500여명의 일본인 아빠를 찾아 양육비를 받아냈다.
김 권사는 "코피노들이 대부분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빈민촌에서 생활하거나 거리에 방치되고 있다"며 "학업이라도 제대로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 정부와 한국인, 한국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63-917-582-0415).
마닐라=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미션&피플] 필리핀서 코피노 보호센터 운영하는 김순희 권사
입력 2014-07-21 02:38 수정 2014-07-21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