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말레이 여객기 피격] 외신이 전하는 참혹한 현장… 분리된 시신들 곳곳에 흩어진 채 방치

입력 2014-07-21 02:18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소도시 토레즈 인근 들판. 옥수수와 해바라기, 밀 등이 가지런히 심어져 평화롭기만 했던 시골 들판은 산산조각이 난 여객기 동체 파편과 검게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 여기저기 나뒹구는 옷가지, 여행 소품 등으로 쑥대밭이 돼 있었다.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추락 현장은 동체가 다 부서지고 불에 타 비행기 형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날개 파편만이 밀밭에 처박혀 있었다. 불탄 잿더미 주변에는 수영복과 여행책자 등이 주인을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방치된 시신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온전한 시신은 전혀 없고 신체가 다 분리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부패가 시작되면서 현장은 매캐한 냄새로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렇게 시신은 계속 썩어갔지만 현장을 조사하거나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친러시아 반군만이 어슬렁거렸다. 반군 관계자는 “아직 어떤 수습팀도 도착하지 않고 있어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은 현장에 도착하고도 반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 측이 이미 38구의 시신을 수습해 러시아 국경도시 인근으로 옮겼다고 지적했다.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근처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을 이어가고 있다. 외신들은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총성과 포성이 계속 들리고 있다”고 했다. 현지 주민도 “정부군이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우르-마길라 지역에 포격을 가해 적잖은 사상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도네츠크의 반군 지도자인 이고르 기르킨의 말을 인용해 “도네츠크 공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양측의 교전에 시신 수습까지 늦어지면서 희생자가 포함된 당사국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7명의 희생자를 낸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현장이 거의 엉망”이라면서 “몇 차례 현장조사 시도가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반군의 조사 방해를 강력 비난했다. 그는 “도대체 현장에서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고 화를 냈다.

친러 반군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정치적 갈등으로 애꿎은 298명이 목숨을 잃은 것도 참담하지만 숨진 영혼들이 안식처도 찾지 못한 채 며칠째 들판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에 국제사회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