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사건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 소행으로 굳어지면서 러시아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를 국제사회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러시아가 ‘외교적 왕따’를 당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국제사회 친러 반군 테러단체 규정, 러시아 제재 목소리도=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프란스 팀머만스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만나 “친러 반군은 국제 테러단체”라며 “테러리스트는 반드시 재판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팀머만스 장관도 “격추를 시킨 자들뿐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한 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군을 도운 러시아에 대한 각국의 압박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의회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추진 중이다. 크리스 머피 미 상원 유럽소위원회 위원장은 주요 상원의원을 두루 만나 새로운 제재 법안 제정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자치공화국을 병합한 이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과 주요 기업을 상대로 제재를 확대해 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유럽연합(EU)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에너지 지원 문제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이었던 EU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호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푸틴 대통령의 참석을 불허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호주는 11월 자국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푸틴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조사 접근 방해 등으로 난항=러시아도 국제조사에 응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테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없다. 당신이 정말로 도울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반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토니 애벗 호주 총리도 러시아에 현장 접근 허용을 공동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자국민 4명이 탑승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푸틴 대통령에게 조사 협조를 촉구했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친러 반군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반군은 계속 현장을 통제하면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조사단의 접근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이 현장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 국제적인 범죄”라고 비난했지만, 반군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짙어지는 러시아와의 연관성=워싱턴포스트(WP)는 반군이 러시아로부터 대공미사일 조작법을 배웠다는 증거를 미국이 이미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필립 브리드러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이 지난달 30일 “반군이 러시아에 차량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 부대 운용법을 교육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발렌틴 날리바이첸코 국가안보국장은 기자회견에서 반군 감청자료를 분석한 결과, “(격추에 사용된) 부크 미사일 부대원들은 러시아 군인들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말레이 여객기 피격] 점점 굳어지는 반군 소행… 궁지로 몰리는 러시아
입력 2014-07-21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