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충남 서산시 지곡면 현대파텍스 공장. 뽀얀 은색으로 1차 도장을 마친 그랜저TG의 후드(차량 앞덮개) 수십 개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모습을 나타냈다. 공장 직원들이 재빨리 달라붙어 하나씩 낱개 포장을 했다. 그랜저TG는 2008년 단종돼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차다. 이 회사가 단종된 차의 부품을 만드는 이유는 애프터서비스(AS)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이 누적되고 노후화된 차의 AS 요구가 점차 늘어나자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는 2005년 11월 현대파텍스 설립을 결정했다. AS용 차체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공장 안은 이른바 ‘금형’(차체의 금속 틀) 천지였다. 금형 사이에 철판을 넣고 프레스로 내려찍으면 새 차체 부품이 뚝딱 만들어진다. 현대·기아차가 그동안 만든 자동차의 문짝, 후드, 천장, 뒷문 등의 금형이 대부분 이곳에 보관돼 있다. 특히 공장 준공 뒤인 2007년 이후 단종된 차량의 차체 금형은 모두 이곳에 있다. 현대차의 금형이 2902개, 기아차의 금형이 1936개나 된다. 김진원 현대파텍스 생산·경영지원실장(이사)은 “1992년 생산이 종료된 ‘각 그랜저’(1세대 그랜저)의 금형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금형은 인기 모델일수록 보관 기간이 길다. 아반떼XD, 쏘나타3 등 옛 인기 모델의 차체는 지금도 현대모비스를 통해 생산 주문이 들어온다. 비인기 모델이라도 생산이 중단된 지 최소 15년이 지나야 금형 폐기를 검토한다. 관련법은 단종 이후 8년간 부품 보관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충족하고도 남는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품 걱정 없이 차를 오래 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엔 현대·기아차가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현지 전략 차종의 금형도 생산 종료 후 이곳으로 옮겨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구형 제네시스와 구형 카니발의 금형이 입고됐다. 금형이 많아지자 이 회사는 올해 실외 금형보관장을 증축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날 현대파텍스 내 도장 공장에서는 구형 쏘렌토 문짝 30개와 싼타페 뒷문 100개, 포르테 문짝 20개가 색이 입혀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량 주문이 없는 AS부품이다 보니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이다. 수익 측면에서는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 이사는 “우리의 존재 이유는 고품질의 부품을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지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파텍스는 부품별로 단가를 받는 대신 현대차그룹에서 위탁생산 운영관리비를 받아 회사를 운영한다. 일부 생산물량은 현대·기아차의 해외 조립공장에 반조립제품(CKD) 방식으로 수출한다. 여러 부품을 조금씩 생산하므로 회사가 가장 큰 신경을 쓰는 건 품질이다. 불량품이 나오면 금형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 회사 측은 “강판 등 재료는 신차와 똑같이 사용하고 최종 테스트도 신차와 같은 기준을 쓴다”고 강조했다.
서산=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르포-AS용 부품 공장 현대파텍스를 가다] 단종된 車 부품 전문 생산… 품질은 신차급
입력 2014-07-21 07:30 수정 2014-07-21 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