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보물창고 같은 곳이에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19층 디자인정보센터(도서관)에서 만난 성환오(34) 책임은 이 센터를 보물이 가득한 장소라고 정의했다. 디자인경영센터 소속인 그는 이곳을 수시로 드나든다. 1년에 대여하는 책만 200권이 넘는다. 1주일에 4권 이상 빌려가는 셈이다. 그는 디자인정보센터를 가장 많이 찾는 직원 중 한 명이다.
최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창조하는 삼성전자 직원이 종이 냄새 가득한 도서관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뭘까. 성 책임은 “인터넷이 발달했지만 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질에 주목한다. “블로그 같은 데는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올려놓는 수준의 글이 많아요. 반면 책은 기획자가 오랫동안 정보를 분석하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유행이나 흐름에 뒤처질 수 있지만 깊이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이란 장소 자체가 영감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무선사업부에서 사용자경험(UX) 디자인을 담당하는 이혜미(27·여) 사원은 도서관에서 특별히 잡지를 챙겨본다. 트렌드를 잘 정리한 ‘메타트렌드’는 그가 즐겨보는 1순위다. 디자이너들에게 인기가 높은 라이스프타일 잡지 ‘킨포크’나 영국 디자인 잡지 ‘모노클’도 반드시 살펴본다. 그는 “신간이 들어오면 센터에서 이메일을 보내줘 보고 싶은 게 있는지 빨리 확인할 수 있다”며 “여기서 이미 본 책인데 대형 서점에 신간이라고 뒤늦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자랑했다.
이 사원 역시 1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탐독하는 ‘책벌레’다. 그는 “도서관에 와서 정보를 하나씩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시설이 쾌적해서 휴식처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디자이너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많이 받고 있다. 시장을 이끌어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돼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다.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책에 대한 갈증도 커진다. 책만큼 영감을 주는 ‘정보원’이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정보센터에는 5600여권의 책이 있다. 모두 디자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책들이다. 과거에는 디자인과 직접 관련이 있는 도록이나 전문서적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라이프스타일 관련 서적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디자인정보센터 사서로 근무하는 백진경 과장은 “패션과 IT 기기가 결합하는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계, 안경 등에 관련된 책도 점차 많이 찾고 있는 분위기”라며 “자동차, 인테리어 등 직접 연관이 없는 책도 수요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디자인정보센터 창가에는 책상이 놓여 있다. 강남역 사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책을 읽거나 영감이 떠오르는 게 있으면 바로 스케치를 할 수 있다. 센터 한쪽에는 인조나무와 탁자를 뒀다. 나무를 보며 잠시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다. 백 과장은 “책이 채움이라면 나무와 탁자는 비움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정보센터는 한 달에 500명가량 이용하고 있다. 책 대출은 2000건 정도다. 이용자는 점점 늘고 있다. 백 과장은 “전자책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직접 책을 보러 오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며 “전자책과 종이책을 병행하거나 전자책으로는 부족해 이곳을 찾는 임직원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기기의 디스플레이가 아직 종이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지를 디자이너들이 책을 보면서 연구하는 거 같다”고 귀띔했다.
디자인정보센터에 있는 책은 일반 서적보다 비싸다. 사진과 그림으로 가득한 전문서적이 많아서다. 비싼 건 한 권에 수백만원을 넘기도 한다. 백 과장은 “업무상 필요한 책은 아무리 고가여도 반드시 산다.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디자이너들이 전문 분야만 ‘편식’하면 균형 감각이 깨질 수 있어 전반적 흐름을 아우를 수 있도록 책을 준비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인문서적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디자인정보센터가 있는 건물 30층에는 인문학, 철학, 심리학 서적을 비롯해 일반 서적을 모은 서초정보센터가 있다. 성 책임과 이 사원은 30층 도서관에도 자주 간다. 디자인정보센터가 전문지식을 섭취하는 곳이라면 서초정보센터는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서초정보센터에는 1만3600권의 책이 있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 임직원들도 많이 찾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국민일보-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주관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삼성전자 디자인정보센터] “디자이너는 시장의 선도자役”
입력 2014-07-21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