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난 1일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일본국헌법은 9조에서 전쟁포기·비무장을 선언하고 있어 평화헌법으로 불렸지만 이제 껍데기만 남게 됐다. ‘평화’라고 쓰고 ‘전쟁’으로 해석하겠다는 것은 전후 일본이 역내에서 기여한 최대의 덕목마저 지우는 셈이다
역대 일본 정부는 타국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자위권과 복수의 침략국 등을 제재하는 집단안보에 의한 무력행사에 대해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를 초월한 것’이라며 불허해왔는데 아베 정부가 뒤집은 것이다. 더불어 미국의 오랜 숙원도 관철됐다.
일본국헌법은 패전 후 일본을 점령했던 미국이 유도했다. 일본 우익들이 일본국헌법을 미국의 강요로 된 것이라며 폄하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패전 직후 미국은 천황제 절대국가를 추구한 일본제국헌법을 폐기하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신헌법을 만들도록 일본 정부에 요청했으나 정부초안은 구태를 벗지 못했다. 이에 연합군총사령부(GHQ)가 헌법초안을 기초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마당이었던 탓인지 인류가 비참한 전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야 한다는 이상향을 꿈꿨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국헌법에 평화조항을 담았으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냉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중원의 패자로 부상하고 한국전쟁마저 터지면서 미국은 자가당착에 빠졌다.
이미 미국은 평화헌법이 반포된 지 채 1년이 못된 1948년 초 일본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맥아더 GHQ 사령관은 50·51년 연두성명에서 “일본국헌법의 전쟁포기 의미는 자위적인 전쟁마저 금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53년 11월 당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부통령은 방일 중 연설에서 “미국이 전쟁포기 선언을 담은 일본국헌법을 만들도록 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아예 노골적으로 일본의 헌법 개정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방위비 지출보다 투자를 우선시하면서 경제대국을 향해 미국의 핵우산에 안주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헌법 개정이 어렵다면 집단적자위권만이라도 행사하라는 미국의 요청은 90년 걸프전쟁을 계기로 극에 이른다. 다국적군을 주도한 미국은 군비만 제공한 일본에 모욕을 퍼부었을 정도다. 이어 미국은 대아시아 전략지침서인 1·2차(2000·2007) 아미티지보고서에서 일본의 헌법 개정을 포함한 미·일 동맹 강화를 주장했다.
이로써 미국이 아베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표정관리를 할 정도로 환영한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정부의 집단적자위권을 둘러싼 헌법 해석 변경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헌법은 정부나 국가권력의 일탈을 막기 위한 장치인데, 이를 무시하고 정부가 임의로 헌법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법률 중의 최고 지위를 갖는 게 아니다. 법률의 목적은 일반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지만 헌법은 국가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이 국가·정부를 향해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입헌주의의 핵심은 국가의 권력행사를 헌법에 의해 제한하는 데 있다. 집단적자위권 행사 선언은 입헌주의를 통째로 깔아뭉갠 꼴이다.
결국 집단적자위권 행사 선언은 그간 미국의 열망에 부응하고 특히 오바마 정부가 2011년 11월 선포한 ‘아시아 회귀’정책에 대한 동맹국 일본의 적극적인 대응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 한·일 관계가 흔들리는 와중에 한국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은 요즘 부쩍 떠오르는 중국에 비해 과거보다 현저하게 위축되고 있는 자국의 국력을 감안해 일본을 앞세우고, 일본은 그런 미국의 압력을 은근히 반기면서 지난 20년 동안 훼손된 국가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역내 안정을 고려하지 않은 패착인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만큼 이제 우리의 선택은 더욱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고립무원은 피하면서 우리만의 길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집단적자위권 둘러싼 미·일의 패착
입력 2014-07-21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