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빗장 풀린 쌀 시장, 남은 과제는…

입력 2014-07-19 02:17

정부가 쌀 시장 빗장을 풀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내년부터는 누구나 관세만 내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관세율을 높게 매겨 국산 쌀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농민단체들은 “신뢰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향후 통상협상 과정에서 상대국이 쌀 관세율을 물고 늘어질 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8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쌀에 대한 관세 예외가 인정돼 1995년부터 올해 말까지 20년간 두 차례 관세화 유예조치를 받았다. 수천년간 이어져 온 쌀농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정서적 측면과 농촌 몰락 우려에 따른 ‘쌀 개방 절대불가론’에 밀려 관세화 대신 매년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반대급부를 내줬다.

올해 의무수입물량은 40만9000t이다. 지난해 기준 쌀 소비량의 9% 정도다. 정부는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의무 수입량이 계속 늘어나면 심각한 공급과잉이 빚어져 국내 쌀 생산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국회 보고 등을 거쳐 오는 9월 말까지 양허표 수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고 연말까지 국내 법령 개정 등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는 300∼5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우리 정부가 과거 쌀 수입가격 등을 바탕으로 관세율을 계산해 제출하면 WTO 회원국들의 검증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산 쌀은 ㎏당 2189원으로 미국산 쌀(791원)보다 비싸다. 이 때문에 농업계와 전문가들은 관세율이 400% 이상은 돼야 우리 농가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400% 이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정부가 제출한 관세율이 검증 과정에서 낮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한국에 200% 이하로 묶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WTO에서 고율관세를 인정받더라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다자 통상협정에서 쌀 관세율이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정부는 한·미 FTA 등 여태껏 우리나라가 맺은 통상협정에서 쌀을 아예 협상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쌀 시장이 열리면 이런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정부는 농가 보호를 위해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 관세율을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FTA와 TPP 등 모든 통상협상에서 쌀을 초민감품목군으로 지정해 관세율 인하 가능성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쌀이 협상 대상에 포함되는 순간 상대국에 약점을 잡힌다. 이전까지는 초민감품목군에 넣을 필요도 없던 쌀이 새로 들어가면서 다른 품목을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업계는 수출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쳤던 정부가 굵직한 통상협정에서 수출 품목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농업을 보호하려 하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정부는 향후 쌀산업발전 대책을 통해 농가 피해를 최소화한다고는 하지만 고율관세 부과라는 대전제가 깨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선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