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바다에서 침몰한 배로/ 꽃다운 영혼들이 뚝뚝 떨어져/ 사라져 간 날/ 절규하는 부모들의 아픈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국땅에서 기도하나이다. (중략) 그 어떤 인간의 말로도/ 우리는 고통당한 저 가족들을 위로할 수 없지만/ 당신은 슬픔의 질고를 당한 저들을 위로할 수 있나이다./ 저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이 나라 백성들의 혼란된 마음에/ 당신의 뜻과 얼굴을 구하는/ 지혜의 마음이 있게 하소서.”
인도 나갈랜드에서 기도와 선교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지난 4월 16일 한국으로부터 온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월호 참사였다. 인도 TV에도 실시간으로 비친 광경에는 아픔과 절망이 가득했다. 물에 빠진 꽃다운 고교생 등 승객들의 절규가 이역만리에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 듯했다.
곧바로 인도의 형제자매들과 ‘한국 땅을 위한 기도’에 들어갔다. 느헤미야가 백성들이 당한 환난,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 수일 동안 슬피 울며 하나님 앞에 금식 기도한 심정이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이 우리 백성, 그것도 너무나 순수하고 사랑스런 학생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생각해봤다. 하나님의 깊은 속을 알 수는 없지만 고통당한 희생자 가족을 위한 위로의 기도는 그날 이후 계속 드려왔다.
세월호 참사는 나를 성찰하고 다잡는 계기가 됐다. 세월호가 앞만 보고 달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병든(난파된) 한국 사회와 유사하다고 봤기 때문에 더욱 겸손과 절제 그리고 초기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에서 기도의 불씨가 조금씩 꺼져가고 있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매일 진행돼온 새벽예배와 QT(경건의 시간), 기도의 행보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날 내가 품어온 신앙의 열정은 그대로인지를 점검하게 됐다.
50여년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계획 속에 우리를 이 땅 가운데 불러주신 것 같다. 불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거쳐 선교사가 된 나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인도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1962년 6월 7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가 태 안에서 발길질을 세게 해서 당연히 아들인 줄 알고 기대했었다고 한다. 그 시절 딸만 둘인 집안에서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어머니가 후일 들려준 태몽도 예사롭지 않았다. 구름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 붉은 태양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어머니가 양손을 벌리고 힘껏 태양을 가슴에 감싸 안다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나를 잉태했다. 어머니의 태몽을 듣다보면 내 이름 끝 자가 영어로 ‘Sun’인 것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들을 잔뜩 기대한 가족들은 내가 태어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앞으로 여자도 국회의원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라면서 위로했지만 내가 아들이 아닌 데 대한 아쉬움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름이라도 남자처럼 하자며 사내 남(男)에 착할 선(善)으로 작명했다. 이름만이 아니라 남자처럼 키우기도 했다. 예쁜 옷을 입히기는커녕 옷과 헤어스타일을 남자처럼 해서 동네 사람들은 나를 한참동안 남자아이로 잘못 알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교식 아들 선호사상이 빚어낸 우스운 에피소드다.
◇약력=1962년 대구 출생. 경북대 영문과 졸업. 85년 안동 영문고 교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 석·박사. 92년 서울 연희동에서 M.I.(Mission International) 서울 창립. 95년 목사 안수. 2007년 인도 나갈랜드 선교사 파송. 현재 인도 나갈랜드 디마푸르 M.I. 선교센터 운영.
정리=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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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2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