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저게 들어가네.”
지난달 29일 서울시 노원구 마들스타디움 축구경기장. 중앙선에서 동료의 패스를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한동렬(33)씨가 수비수를 제치고 30m가량 드리블로 돌파했다. 중앙공격수를 향해 힘껏 올린 크로스는 공격수와 골키퍼를 그냥 지나쳐 골망을 흔들었다. 어정쩡한 긴 패스가 ‘슛터링’(슛과 센터링의 합성어)이 돼 골로 이어졌다. 뜻밖의 득점을 한 한씨는 관중석을 향해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40대 에어컨 설치기사, 50대 시장 상인 등 동료들이 뛰쳐나와 한씨를 얼싸안았다.
한씨가 속한 축구팀 ‘FC노해축구회’는 이 골로 ‘노원구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3년 역사를 가진 노원구의 ‘한상현 명예회장기 축구대회’를 주민들은 ‘노원구 월드컵’이라 부른다. 전후반 20분씩 40분간 치르는 이 축구대회에 올해 노원구 축구연합 소속 19개 팀이 참가했다. 노원구민이라면 누구나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등록된 선수만 1800명이 넘는다.
각 팀은 30대 3명, 40·50대 4명씩 연령 비율을 맞춰야 한다. 왕년에 축구라면 큰소리쳤던 장년층, 아직 마음은 젊은데 생활에 지쳐 몸이 따라주지 않는 중년층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가 경기시간 40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이 대회는 동네 주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며 2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꿋꿋이 이어져 왔다.
강교원(58) FC노해축구회장도 이번 대회 첫 게임에 골키퍼로 나섰다가 상대편 공격수의 발에 채여 손가락 골절상을 당했다.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그는 올해로 대회에 5년째 참가한 ‘베테랑’이다. 그는 “대회가 다가오면 젊은 선수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강훈련을 한다”며 “주말에 젊은 사람들과 운동하면 건강에도 좋고 뛰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몸이 개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한씨가 만들어낸 결승골은 23년 역사를 가진 ‘노원구 월드컵’의 마지막 골이 됐다. 해마다 사비 500만원씩을 들여 이 대회를 개최해 온 한상현 명예회장의 건강이 나빠져 내년부터는 대회가 열리지 못하게 됐다. 올해 79세인 한 회장은 고령으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등 건강에 이상이 찾아오자 내년부터 행사를 중단키로 했다.
1990년대 시의원으로도 활동했던 한 회장은 10대째 노원구 공릉동에서 살아온 동네 터줏대감이다. 마지막 대회도 지켜보지 못한 그는 18일 “20년 넘게 대회를 후원하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고 몸도 불편해 조용히 여생을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원구 축구연합회 이상화(58) 회장은 “한 회장은 축구는 열심히 하는데 몸이 안 따라줘 대회에 참가하기 어려운 초보 선수들을 위해 이 대회를 만들었다”며 “지금까지 대회에 출전했던 노원구민이 수천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23년을 이어오며 이 대회는 단순한 조기축구 모임을 넘어 하나의 지역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 대회를 위해 1년 동안 훈련한다. 그러다 보면 서울이란 환경에서도 정을 나눌 수 있다. 아직 우승을 못해본 팀이 많은데 대회가 사라지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기획] 23년 ‘노원구월드컵’ 아쉬운 마지막 골
입력 2014-07-19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