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여객기 피격 주체를 놓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반군 소행을 뒷받침하는 도청자료를 공개했지만, 반군은 자료가 진짜인지 불분명하다고 반박했다.
◇도대체 누가? 일단 반군 소행에 무게 실려=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사건은 동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반군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도청자료 2건도 신속하게 공개했다. 도청자료에서 우크라이나 반군 대원은 러시아 정보장교에게 "비행기가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 광산 인근에서 격추됐다"며 "처음 발견된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다른 자료에서는 반군 사령관이 "기뢰부설 부대가 항공기 한 대를 격추했다"고 말했다. 또 한 반군 대원이 "민항기인 데다 여성과 아이들이 가득하다"고 말하자 "어쩔 방법이 없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반군 측은 즉각 반박했다. 이들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총리는 "우리가 보유한 미사일은 3㎞ 상공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다"며 "사고기가 운항하는 10㎞ 지점까지 도달할 무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카타라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특별대표는 "도청자료가 진짜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MH-17편의 블랙박스를 회수한 반군은 러시아 연방항공위원회(IAC)에 보내 분석을 의뢰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소셜미디어사이트 VK닷컴에는 반군이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수송기로 오인해 격추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반군 지도자 이고르 기르킨은 사이트에 "방금 안토노프-26 수송기를 토레즈에서 격추했다"며 "우리 영공에서 비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언급했다. 여객기가 추락한 지점과 동일하다. 이들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수송기를 격추한 바 있다.
◇부크 미사일 사용에 러시아 배후 의심=피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크(Buk) 미사일의 성능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부크 미사일은 냉전시절 소련이 고(高)고도 전폭기 요격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최대 2만5000m 고도의 비행물체를 요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미사일을 반군이 확보했거나, 러시아가 지원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군 정보당국은 미사일이 어디에서 발사됐는지를 추적 중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반군이 러시아제 부크를 발사해 여객기를 격추했다고 사실상 결론지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만 이를 공식 확인하지는 않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증거 보전과 즉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반군이나 러시아가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정부군 수송기로 오인해 공격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러시아 언론은 현장 인근에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최소 27대의 이동식 발사대를 갖춘 부크 미사일 포대를 운영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 정보 분야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 소행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책임 논란 불가피, 푸틴 노렸다?=법적인 책임 논란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법에 의해 격추 책임자를 처벌하고 배상금을 받아내는 일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반군 책임으로 결론이 날 경우 국가가 아닌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배상금도 받아내야 한다. 자칫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는 "끔찍한 비극이 우리의 삶을 바꿔 놨다"며 "국제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기를 노린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러시아 항공청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의 전용기와 사고 여객기가 37분의 격차를 두고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했다"며 "두 비행기 외관은 유사하며 크기도 아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여객기 참사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전전을 펴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말레이 여객기 피격] “항공기 격추했다” 반군이 러 장교에 보고
입력 2014-07-19 02:37 수정 2014-07-19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