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당선됐을 때 청와대와 정부는 다소 부담을 느꼈다. 김 대표가 친박(친박근혜)과 대척점에 선 비주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권에서 김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더 큰 걱정을 했다. 바로 김 대표와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부담스러운 구원(舊怨)이 떠올라서다.
◇만만치 않은 정치적 구원=정 총리는 김 대표에게 뼈아픈 정치적 시련을 안겨줬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정 총리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을 때 김 대표는 두 번째 공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김 대표는 ‘여론조사 컷오프 룰’로 불명예스럽게 낙천했고 고심 끝에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기 전까지 한동안 ‘정치적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김 대표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비겁한 짓”이라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와 김 실장은 정치적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1974년 공안 검사 시절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냈다.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정수장학회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 박정희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던 박정희정권 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반면 김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하생으로 정치에 입문한 ‘상도동계’ 출신으로 김 실장과는 정치적 토양 자체가 다르다. YS와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당시 야권 인사들이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창립 멤버로서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둘은 한동안 서로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철도파업 당시 20여일간의 파업을 매듭짓는 중재 역할에 나선 김 대표는 의견 조율을 하려고 김 실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상당히 서운해 했다는 후문이다.
◇앙금 씻고 신밀월 관계?=새 지도부 출범 이후 일단 분위기는 훈훈하다. 당 내부에선 정치적 앙금을 씻고 ‘신밀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김 대표와 김 실장은 지난 15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간 오찬 회동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김 실장은 오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에 온 김 대표를 청와대 본관 앞으로 마중 나가 “(당 대표 당선을) 축하한다”면서 반갑게 덕담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김 실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화답했고 이후 두 사람 간 ‘핫라인’도 구축됐다고 한다. 인사 실패와 권력 독점의 장본인으로 김 실장을 지목해 왔던 김 대표와 그를 견제해 온 김 실장 사이에 화해무드가 엿보였다. 김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실장도 억울한 점은 많았을 것”이라며 그를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김 대표는 정 총리에 대해서도 공천심사위원장 시절 자신의 낙천을 주도하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정 총리는 김 대표에 대한 공천 탈락을 재고하자던 편이었다고 뒤늦게 알려지면서 오해가 풀렸다는 얘기도 있다.
정 총리는 지난 16일 오전 국회를 찾아와 김 대표를 만나 악수하면서 축하인사를 건넸고 당정 회동을 수시로 갖자는 데 서로 의견 일치를 봤다. 10여분간 만남에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18일 “김 대표, 정 총리, 김 실장 모두 경륜과 정치력을 갖추고 있어 당·정·청 관계가 껄끄러울 것이라는 것은 기우”라고 말했다.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김무성 대표 ‘舊怨’ 씻고 당·정·청과 소통 이룰까
입력 2014-07-19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