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숙제 지도·놀이와 학습 접목… 학부모 만족도 굿~

입력 2014-07-21 02:38
서울 노원구 월계로 월계초등학교 2학년 돌봄교실 학생들이 ‘도시농업’ 수업 시간에 비트와 시금치로 만든 식용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구성찬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 월계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 보안관의 안내에 따라 교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친구들과 달리 교정에 남아 있던 48명은 줄을 지어 별관으로 이동했다. 방과후 돌봄교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이들이었다. 이 학교는 맞벌이 부부나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자녀를 상대로 방과후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무료 프로그램

이날 방과후 교실 3곳에서는 ‘도시농업’ 수업이 진행됐다. 서울시 도시농업전문가회 정은희(44·여)씨가 초청 강사였다. 월계초등학교는 1년에 10번 정도 도시농업 강사를 초빙해 도시 아이들에게 무료로 농촌생활을 가르치고 있다.

뿌리채소 ‘비트’에 대한 강의가 시작됐다. 정씨가 학생들에게 비트를 보여주며 “먹고 싶은 사람?” 하고 묻자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들며 “저요, 저요”를 외쳤다. 정씨는 잘게 썬 비트를 숟가락으로 떠줬다. 무슨 맛이 나냐고 물었더니 “나무 맛이요” “당근 맛이요” “신선한 감자 맛이요”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정씨는 “선생님처럼 약간 뚱뚱한 사람이 비트를 먹으면 날씬해진대요. 또 피를 맑게 해주는 고마운 식품이에요”라고 설명했고 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은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비트와 시금치로 만든 물감으로 엽서를 그리는 과제가 주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집중력을 발휘하며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효찬(8)군은 하트 모양의 그림 안에 ‘행복’이라고 적었다. 효찬이는 기자에게 엽서를 보여주며 “‘행복’은 좋은 말이니까 그림에 그려 넣었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1시간30분 도시농업 수업이 끝난 오후 3시, 교실에는 ‘도라지꽃’ 노래가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식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이날 메뉴는 손만두와 결명자차. 돌봄교실 전담 교사와 자원봉사자가 큰 냄비에 쪄둔 만두를 학생들의 식판에 담았다.

#숙제 지도에 학부모 만족도 ‘쑥’

같은 시각, 1학년 학생 16명은 돌봄 교사 지도 아래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내준 숙제를 하고 있었다. 돌봄 교사 차순옥(45)씨는 학생들의 과제를 도왔다. 과제를 끝낸 학생들만 블록 쌓기, 보드게임 등을 할 수 있다. 신우성(8)군은 숫자 쓰기 연습장을 차씨에게 보여준 뒤 체스 게임판을 가지고 교실 뒤편으로 갔다.

그림일기를 작성하던 이수현(8)양은 색연필로 밑그림에 색을 입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문화센터 강사로 일하는 엄마 장혜은(38)씨가 일을 마치고 수현이를 찾아온 것이다. 장씨는 “예체능 위주의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고 학교가 안전하다는 점 때문에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 숙제를 봐주는 게 큰 장점이다. 차씨는 장씨에게 “수현이 알림장 숙제는 다 시켰고 책읽기만 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지난달 이 학교가 돌봄교실에 참여 중인 학부모 48명을 대상으로 벌인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는 응답이 100점 만점에 94.2점이나 나왔다. ‘사교육비 절감’ 항목은 89.6점을 기록했다. ‘계속 참여시키겠다’는 응답도 93.8점이었다.

차씨는 수현이가 엄마와 함께 돌아가자 돌봄 일지 귀가 현황에 ‘이수현-어머니’라고 적었다. 안전한 귀가를 위해 가족이 반드시 직접 데리러 와야 아이를 귀가시키고 있다. 박경희 교감은 “돌봄교실을 통해 부모가 안심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동시에 학생들의 배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계초 학생들은 이 밖에도 돌봄교실을 통해 생활체육 영어교육 미술 등의 수업을 한다.

#놀이와 학습을 접목한 운영

학생 54명을 상대로 돌봄교실을 운영 중인 서울 성일초등학교도 학부모 호응이 뜨거운 곳 중 하나다.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려고 마련해둔 곳을 돌봄교실 전용 공간으로 꾸며 3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놀이와 접목해 학생들이 방과 후에도 집중력 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성일초에서는 수학과 놀이를 접목한 ‘수 놀이’ 수업이 진행됐다. 숫자를 보여주면 학생들이 그림판에 그 숫자에 맞는 자석을 붙이는 놀이다. 돌봄 교사와 시간강사 등이 학생들의 놀이를 도와준다. ‘명예교사’로 불리는 은퇴한 교사들이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을 직접 맡아 지도하기도 하고 부모 손이 미치지 못해 과제를 빼먹는 일이 없도록 살핀다. 목요일에는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스토리텔링’ 수업이 진행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안전교육도 하는데 지난 8일에는 ‘화재를 신고하는 방법’ ‘차에 탔을 때 지켜야 하는 자세’ 등에 대한 강의가 이뤄졌다.

또 미술을 전공하고 중등교사자격증을 보유한 돌봄 교사가 직접 미술을 가르친다. 요일별로 종이접기 공예 수놀이 쿠킹 클레이(점토만들기) 등 다양한 수업이 있다. 방학 중에는 동요 부르기, 창의미술, 레고 조립, 도미노 등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수면실과 휴게실을 둬 학생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학교는 오후 8시까지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8명이나 돼 ‘저녁 돌봄’ 교실도 운영한다. 저녁식사도 제공하는데, 하루 3000원을 내면 돌봄 교사들이 직접 조리하는 안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3명 전원이 급식을 원한다고 답해 방학 중 석식도 제공키로 했다.

돌봄교실을 담당하는 오정옥 교사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며 “부모 손이 미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학교가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