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여객기 피격] 전 세계 경악… 푸틴 궁지

입력 2014-07-19 03:33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유럽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가 밀고 있는 친(親)러시아 반군세력 간의 무력 충돌에 간여하기를 꺼려 왔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 등 다수의 유럽인들이 탑승한 민간 항공기가 격추됨에 따라 국제사회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 사태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국제 사회가 비켜갈 수 없는 주요 현안이 된 것이다. 영국은 당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특히 미사일이 친러시아 반군 측에서 발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반군 활동을 암암리에 지원해 온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2007∼2009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유럽 정책 보좌관으로 일한 데이먼 윌슨 애틀랜틱카운실 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민간항공기 격추에 러시아가 관련된 증거가 확실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를 현재처럼 내버려 둘 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핵심 에너지기업과 은행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한 미국은 외교·경제 등 전방위 대러시아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 안건을 유엔 안보리는 물론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유엔 총회에 상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동안 가다듬어 온 전면적인 러시아 경제제재도 심각히 고려할 것이다.

여객기 추락이 반군 책임으로 최종 확인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전문가는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쐈다는 증거가 있다면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태도를 바꿔 푸틴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18일자 사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너무 멀리 왔고 너무 위험해졌다"면서 "이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푸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교전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던 국제사회의 노력을 한층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사 수습과 대책 마련에 매달릴 국제사회도 당장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 협상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어졌다. 여기에 반군의 입장을 지원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을 거들 서방까지 책임 공방에 가세할 경우 양 진영의 대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치열했던 교전은 당분간 수그러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끔찍한 비극이 역설적으로 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사태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는 가능한 빨리 만나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며 휴전과 평화회담을 촉구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