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여객기 피격] 훼손된 시신 수㎞ 흩어지고 주인 잃은 가방 나뒹굴어

입력 2014-07-19 02:32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추락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샤흐툐료스크 인근에서 18일(현지시간) 탑승객 유류품들이 다수 발견됐다. 세 동강으로 분리된 시계(왼쪽사진)와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발리와 롬복을 소개한 여행책자 '론리 플래닛'(오른쪽 사진 왼쪽 아래) 등이 보인다. AP AFP연합뉴스

피격된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추락 현장은 참혹했다. 산산조각이 난 여객기가 검게 불탄 채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둘러싼 반목은 무고한 298명을 순식간에 시커먼 잿더미로 만든 참사로 이어졌다.

◇좌석벨트 맨 채 훼손된 시신 수십 구=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여객기가 17일(현지시간) 떨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샤흐툐르스크 인근은 기체 잔해로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잔해는 추락 지점에서 수㎞ 반경까지 퍼져 있었다. 시골마을 들판에 떨어진 비행기 동체 꼬리에 말레이시아항공 로고가 남겨져 있어 이곳이 여객기 추락 현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비행체는 추락 직후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고 화염도 뿜어져 나왔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주민들이 현장에 왔을 때 생존자는 없었다.

대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신 수십 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특히 좌석벨트를 맨 채 숨진 승객 수십 명이 발견됐다. 그마저도 화염에 훼손돼 시커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신이 대부분이었다. 추락 후 폭발 때 튕겨져 나간 듯 사고 현장에서 수㎞ 떨어진 지역에서 신체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다. 구조대가 121구 정도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온전한 시신은 거의 없었다.

현장에선 타지 않은 짐가방이 흩어져 있었다. 인근 해바라기 밭에는 노트북과 헤드폰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옥수수 밭에는 임자 없는 여권들만이 나뒹굴었다. 여객기가 추락한 곳은 친(親)러시아 반군 장악지역으로 반군들이 현장에서 잔해를 바라보는 모습이 영국 BBC방송에 잡히기도 했다.

◇국제에이즈학회 참석하려던 승객 100명 달해=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은 18일 긴급 회견에서 "격추된 여객기에는 이번 주 일요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학회(IAS)에 참석하려던 저명 학자와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전문가들이 많이 탑승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향후 국제 에이즈 연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호주의 퍼스로 가려던 여객기였다. 호주 언론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전체 탑승객 중 학회 참석 예정자가 1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탑승객 중에는 IAS 회장을 지낸 네덜란드의 저명한 에이즈바이러스(HIV) 연구자 욥 랑게도 있었다. 멜버른에서 열리는 이번 학회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연사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탑승객 중에는 신생아 3명을 비롯해 어린이가 80명 포함돼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미·러 즉각 휴전 촉구, 반기문 '국제사회 조사' 요구=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우크라이나 등 모든 당사자가 원만한 조사를 위해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다면 연방수사국(FBI)과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 항공청 알렉산드르 네라디코 청장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이 추락지역에서의 전투 중단에 합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동부 도네츠크주 반군 지도부는 조사기간 동안 교전을 중단하자고 정부군에 제안했다. 휴전 기간으로 3일을 제시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네덜란드는 사고현장에 조사단을 급파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국제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호주는 호주 주재 러시아대사를 소환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각국 항공사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우회 운항에 들어갔다.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표적인 항로로 평소 하루 300∼400편이 사용했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엔 운행량이 100여편으로 줄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