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2015년 전면 개방] 의무수입 물량 ‘큰 부담’… 高관세율 유지가 관건

입력 2014-07-19 02:57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해마다 늘어나는 의무수입물량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 유예를 선택한 필리핀이 2.3배 늘어난 의무수입물량을 반대급부로 내주게 된 점도 확실한 신호로 작용했다. 조기 개방과 고율관세화를 선택한 일본과 대만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가로 지난 20년 동안 매년 증가해온 쌀의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수급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쌀 소비량 감소 추세를 고려할 때 이 물량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쌀 수급에 매우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쌀 의무수입량은 지난해 국내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하는 40만9000t까지 불어났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 개방을 미뤄온 필리핀은 2012년부터 2년간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을 벌인 끝에 2017년까지 쌀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 물량을 연간 35만t에서 80만5000t으로 2.3배 늘리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과 같은 조건으로 쌀 개방을 연기한다면 의무수입 물량은 국내 쌀 생산량의 약 22%에 달하는 94만t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공급과잉이 빚어진다. 결국 국내 쌀 생산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쌀을 관세화한 일본과 대만은 수입 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추가적인 수입량은 많지 않다. 일본은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 시점(2001년)보다 2년 앞서 빗장을 풀어 ㎏당 341엔의 관세를 매겼다. 이를 가격 기준으로 환산하면 평균 관세율 300∼400%에 해당한다. 일정보다 먼저 관세화를 선택하면서 결과적으로 의무수입물량은 7만5000t 정도 줄어들었다. 의무수입량을 제외한 수입 물량은 연간 350t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대만은 2003년 이후 관세화를 더 미룰 수 있었지만 의무수입량 급증을 우려해 관세화를 택했다. 가격기준 관세율은 563%다. 의무수입량을 제외한 대만의 쌀 수입량은 연간 500t 정도에 그친다.

정부는 두 나라의 선례로 볼 때 쌀 시장 개방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고율관세만 유지하면 국내 시장에 주는 피해는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장관은 “전문가들이 300∼500%를 얘기하는데 정부 안도 그 범위 내에 있다”며 “관세화가 되더라도 고율관세를 매기면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시장 개방 이후 쌀 수입이 급격히 늘어나면 특별긴급관세(SSG)를 부과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과거 3년치 물량에 일정량 이상의 물량이 들어오면 관세율의 3분의 1을 추가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모든 통상 협상에서 쌀을 우선적으로 양허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며 “정부를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용어 정리

쌀 관세화=수입수량제한, 수입허가제도 등 각종 보호수단을 없애고 국내외 가격차만큼 관세를 설정, 해당 관세를 납부할 경우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관세만 내면 누구나 외국 농산물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면 개방을 의미한다. 쌀 관세는 정부가 '(국내가격-국제수입가격)/국제수입가격×100%'를 적용해 결정한다.

관세화 유예=정해진 관세만 물면 모든 농산물의 수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관세화를 일정 기간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은 특정국가의 식량안보·환경보호 등을 위한 경우 주요 품목은 관세화를 일정 기간 미룰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 UR 협상에서 1995∼2004년 쌀 관세화를 유예하기로 했고, 2004년 또다시 개방 시점을 10년 뒤로 미뤘었다.

최소시장접근(MMA·Minimum Market Access) 물량=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발생한 의무적 수입 물량을 뜻한다. 국내 소비량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산정된다. 우리나라는 MMA에 따라 연간 40만9000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한다. 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쌀 소비량의 9%가량을 차지한다.

이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