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부장인 임운동(45)씨는 여름휴가 떠날 일이 고민이다. 여행지까지 꽉꽉 밀리는 교통정체도 지겹고 행락지에 붐비는 사람도 싫다. 휴가철이라고 바가지를 씌워대는 상혼도 넌더리가 난다. 올해만큼은 혹시나 가족과 함께 오붓한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중학교 2학년 딸의 학원 방학 기간이 모두 8월 첫째 주로 잡혔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대부분 학부모들은 극성수기 외에는 여름휴가를 떠날 수가 없다. 학원들의 방학기간이 7월 말∼8월 초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교통체증과 행락지 혼잡, 바가지 상혼 등으로 극성수기 휴가엔 피로가 풀리기보단 불쾌한 경험이 늘어난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학원의 휴가 편성에 대해 간섭할 명분과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18일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학원들의 방학 일정에 대해 어떤 규제 및 권고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엔 산업부가 학원들에 휴가일정을 8월 둘째 주로 변경하도록 요청했다. 원전 비리의 여파로 원전 3기가 가동 중단되면서 전력부족을 우려한 정부가 전력 피크 기간인 8월 둘째 주에 휴가를 몰아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당시 산업부는 모든 학원들이 휴가 일정을 옮기면 피크 전력이 약 23만㎾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소형 화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 시설 용량이다.
올해도 산업부는 학원연합회를 만났다. 학부모의 휴가철 불편 해소보다는 전력수급이 걱정돼서였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수요가 몰리는 8월 둘째 주, 셋째 주로 휴가를 분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학원연합회는 지난해엔 워낙 비상 상황이라 협조를 약속했지만 올해는 수급 상황이 좋지 않으냐며 퇴짜를 놨다.
학원들은 보통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5월 말∼6월 중순에 방학 일정을 잡는다. 대부분 7월 말∼8월 초에 휴가를 편성하는데 학교 방학과 보충수업 기간, 직장인들 휴가가 몰리는 시기를 고려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한 학원 관계자는 “단지 7월 말∼8월 초에 여름휴가를 떠나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교육 당국은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원 방학 편중을 해소하기 위한 어떤 정책도 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자꾸 기자가 채근하자 “사회적 비용 지출이 막대하다면 한번 검토해 볼 사안이라고 본다”며 형식적인 답변만 했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육 당국이 학원의 여름방학 시기를 분산시키는 가이드라인을 원하고 있다. 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업무에 찌든 직장인들이 여름 휴가기간만이라도 재충전의 기회로 삼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선정수 이도경 기자 jsun@kmib.co.kr
[세태기획] 학원 때문에… 밀리고 치이는 여름휴가
입력 2014-07-19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