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사람마다 탕평책 말하는데

입력 2014-07-19 02:28

“문화예술계에 그렇게 인물이 없나?”

정성근 아리랑TV 사장이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문화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업무능력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적혀 있는 인물이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방송 앵커 출신인 정 후보자는 지난 3월 아리랑TV 사장에 임명된 지 3개월 만에 장관으로 ‘깜짝’ 지명됐다.

문화계는 물론이고 체육계와 관광산업 등 할 일이 태산 같은 문화부에서 이 분야 경력이 일천한 정 후보자가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 후보자는 미국 특파원 시절 영화도 몇 편 보고 공연도 가끔 봤다며 업무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 음주운전 사실과 청문회 위증에 이은 폭탄주 회식 등 논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음주운전 사실이 청와대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났는지 알수없으나 만약 몰랐으면 문제고 알고도 가볍게 생각했다면 더 큰 오판이다. 연예인들의 음주운전이 종종 기사화되고 비난이 들끓는 것에서 보듯 공인들의 음주운전에 대한 국민들 시선은 관대하지 않다. 장관 후보자가 음주운전을 두 차례나, 그것도 뻔뻔하게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정 후보자는 지난 10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증 논란’을 자초하며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 거주 문제를 놓고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추궁에 오전에는 “실제 거주했다”고 답했다가 오후에는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해 버렸다”며 말을 바꿨다. 야당은 이를 문제 삼아 청문회 진행을 거부했고 결국 청문회는 정회되며 파행을 보였다.

그는 청문회가 정회된 와중에 국회 앞 한 식당에서 ‘폭탄주 회식’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술로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폭탄주를 마실 수는 있다. 정 후보자가 청문회의 ‘위증 논란’에 속이 상해 폭탄주를 마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장관 후보자로서 신중하지 못한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의 임명 강행 수순에 대해 ‘오기인사’ ‘불통인사’ 등의 비판이 쏟아져 나오자 정 후보자는 지난 16일 결국 자진사퇴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33일 만이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다 설명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냥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간 공직 후보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마음을 어지럽혀드렸다. 용서를 빈다”고 밝혔다.

그의 자진사퇴에는 치명적인 여자 문제도 걸려 있었다는 야당 측 주장도 나왔으나 이제 개인 신분으로 돌아간 사람에게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급선무는 다시 장관 후보자를 찾는 일이다. 유진룡 장관이 면직통보를 받고 조현재 제1차관마저 한국체육대학 총장 응모를 위해 사표를 제출해 면직 처리된 상황이어서 앞으로 문화부 업무공백이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문화부 차관을 지낸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 모철민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이어령 이창동 유인촌 전 장관처럼 대중적인 인사를 찾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통령의 수첩에 적혀 있는 인사만으로는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인재를 골고루 등용한 정조의 탕평책이라도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