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특급’ 전설이 되어 그라운드 떠나다

입력 2014-07-19 02:57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18일 은퇴식이 마련된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마운드로 비를 맞으며 입장하고 있다.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선수의 공식 은퇴식이 치러진 것은 박찬호가 처음이다. 박찬호가 떠나는 날 구장에는 장맛비가 내렸지만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광주=곽경근 선임기자

“굿바이! 코리안 특급.”

박찬호(41)가 18일 전설이 되어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통해서다. 박찬호는 한국 야구의 아이콘이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에다 동양인 메이저리그 최다승(124승) 투수다. 한국선수로는 한국과 미국·일본 프로야구 모두에서 승리를 거둔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박찬호는 한양대에 재학 중이던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다저스를 시작으로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뛰었다. 2011년에는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해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이승엽(삼성 라이온즈)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고향(충남 공주) 팀인 한화 이글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선수로 뛴 19년 동안 박찬호는 9개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에서 태극마크를 단 것까지 포함하면 박찬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총 10개의 유니폼을 입었다. 박찬호의 한·미·일 프로 생활 기록은 506경기, 2056이닝 투구, 130승113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4.40, 탈삼진 1804개다.

이런 불멸의 기록만으로 그의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박찬호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들의 청량제 역할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국민들과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한국 프로야구에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2년 한화에 입단했다. 계약금과 연봉 6억2400만원을 모두 기부했다. 박찬호가 닦은 길을 통해 많은 한국 선수들이 빅리그에 진출했다. 류현진(LA 다저스)과 추신수(텍사스)는 현재 정상을 향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은퇴식에선 전 소속팀 한화가 그의 상징과 같은 등번호 61번을 기념하는 5종류의 액자로 구성한 ‘61 기념 컬렉션’을 박찬호에게 선물했다. 이 선물은 61번을 활용한 캐리커처, 한화 후배 61명의 자필 메시지를 담은 미니 야구공 모형, 한화 시절 활약상이 담긴 610컷의 사진을 박찬호의 얼굴 형태로 제작한 이미지, 박찬호의 배번·이름이 담긴 미니어처 유니폼 등으로 구성됐다. 선물은 올스타전에 출전한 한화 소속 선수 김태균, 이태양, 펠릭스 피에가 직접 전달했다. 이어 박찬호는 팬들의 환호 속에 경기장을 떠났다.

미국 메이저리그 팬들은 압도적 팬투표를 통해 지난 16일 열린 올스타전에 살아있는 전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40)를 초청했다. 올스타전에 모인 모든 선수와 팬들은 기립 박수로 영웅의 마지막 올스타전을 기념했다. 지난해 올스타전은 같은 팀 소속이던 마리아노 리베라(45)를 위한 무대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올스타전을 통해 은퇴식을 치른 선수는 박찬호가 처음이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들이 올스타전 같은 빅 이벤트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기념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