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메는 가방인 백팩(backpack)이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는 청소년들이 주로 애용했으나 요즘은 40, 50대 직장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백팩을 멘 여성들도 쉽게 눈에 띌 만큼 남성 전유물이란 인식도 깨졌다. 유명 브랜드 상품은 개당 50만∼60만원짜리 한정판도 있다. 국내 시장 은 최근 3∼4년 사이 매년 20% 이상 성장, 올해는 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백팩은 원래 사냥을 위한 용도였다. 사냥감의 먹이를 쉽게 옮기기 위해 잘라 넣고 다닌 것이 백팩의 쓰임새였다. 짐승의 가죽과 뼈가 주 재료였고 실 대신 내장으로 꿰매 만들었다. 요즘 같은 모양을 갖춘 것은 1900년 이후다. 룩색(rucksack) 냅색(knapsack) 팩색(packsack) 등 다양하게 불렸다.
세계적인 디자인 박물관인 영국의 디자인뮤지엄이 2011년 선정한 ‘세상을 바꾼 50가지 가방’에는 4개의 백팩이 포함돼 있다. 이 중 두 개는 군용으로 1910년에 미국 육군이 만든 M-1910 하버색과 1997년 제작된 몰리 백팩이다. 전자는 세계 역사를 바꾼 1·2차 세계대전에 쓰인 제품이며, 후자는 현재 미군의 주력 군수품이다. 몰리는 우리 젊은층들 사이에 중고품이 개당 10만원에 거래될 만큼 인기 있다. 나머지 2개는 2010년 제작된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인 막스마라사의 데이색, 1999년 네덜란드의 수잔 부어가 만든 크니르체다. 루이비통 여행가방 ‘스티머백’, 코코샤넬 ‘2.55백’, 그레이스 캘리의 ‘캘리백’ 등 세계적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브랜드 가치까지 지니게 됐다.
최근 백팩에 오명이 더해졌다. 대중교통 이용객들 사이에 ‘무례’의 상징이 됐다. 백팩을 메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짓눌리기 예사고, 키 작은 사람들은 안경이 떨어지거나 얼굴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 등과 등 사이에 맞닿은 백팩은 통로를 차단한다. 급기야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5월부터 백팩 에티켓 캠페인을 펴고 있다. 한 시인은 ‘등은 무의식의 자아요, 존재의 또 다른 이면’이라고 했다. 등에 멘 백팩이 그 사람의 인격까지 가늠케 하는 시대다. 프랑스 지하철 당국은 백팩 예절을 지키지 않는 승객의 머리를 거북이로 형상화해 비꼰다. 짐승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등을 잘 살펴야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백팩 에티켓
입력 2014-07-19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