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의 문학산책] 슬픔이라는 ‘인생의 친척’

입력 2014-07-19 02:47

어떤 문학 작품은 잊혀지지 않는 단 한 문장, 단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 이렇게 내장된 독서의 기억이 삶의 불가해한 부분을 해석해주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부분을 숨기고 있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칭송할 만하다. 읽는 이의 삶에 개입하는 그런 문장이나 장면은 우연히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작품 전체의 구성 속에 은밀하게 준비돼 있다가 적소에 배치돼 그 의미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것을 경험하지만 그런 장면이 있다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영상의 기억과 문학적인 기억이 다른 이유다. 그러나 비교될 만한 예가 영화에도 얼마든지 있다. 일예로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우주의 무중력 공간에서 재회해 허공에 떠있는 한 쌍의 남녀의 모습이 그러하다. 사랑의 크기와 순수성의 깊이를 무중력의 순간으로 형상화한 그 아름다운 장면에 다다르기 위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의 친척’은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작품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지게 된 이 작가의 대표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오에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의 지점에 쓰여진 ‘개인적 체험’이나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만연원년의 풋볼’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누가 이 작가의 작품 한 권을 추천하라고 하면, 어쩌면 이 작가의 소설 중에서 가장 비소설(혹은 사소설)적일지도 모를 ‘인생의 친척’을 들고 싶다. 이 작품의 초반부에 위치해 일종의 라이트모티프로 작품 전체를 주도하는 한 장면이, 이 작가의 작품들을 여일하게 관통하고 있는 고통이라는 주제를 가장 극한적으로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은 지 수년이 지났건만 나는 단 한 장면으로 이 작품이 제안하는 저 짙고도 깊은 존재의 늪으로 단숨에 하강할 수 있는 것이다. 한명의 정신지체 소년과 또 한명의 지체부자유 소년, 두명의 여리고 상처받은 영혼이 휠체어를 밀고 한때의 행복한 기억이 배어 있는 별장지의 빈 숲 속, 벼랑을 향해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벼랑 앞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그 힘겨운 걸음은 지속되고, 한순간 두 소년과 휠체어 모두 저 밑으로 떨어진다.

아무런 묘사가 없어도 그 순간 절벽을 감싼 무거운 침묵, 짙은 숲의 색깔, 그 장면에 직면한 두 아들의 어머니인 한 여인의 짧고 깊은 외침이 바로 옆에서처럼 감지된다. “이 세상은 무서운 거야. 개는 짖지, 노려보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 발작은 일어나지!”라고 부르짖게 하는 근원적인 공포가, 무서운 세상에 생살로 노출된 소년들을 사로잡은 전율의 크기가 이 장면 속에 압축돼 있다. 작가는 이 장면을 직접 서술하지 않는다. 소년들의 아버지의 편지에 간접적으로, 짧게 묘사돼 있기에 두 소년, 그리고 그들을 아들로 둔 한 여인의 고통에 대한 작가의 사려 깊은 존중이 더 잘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의 친척’은 바로 이 같은 극한적인 상실 이후에도 삶을 살아내야 하는 한 여인, 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겨내는 한 여인, 그로부터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여인인 구라키 마리에에 대한 얘기다. 정신지체아인 첫아들, 이어서 사고를 당한 둘째 아들의 삶을 ‘속죄’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범상치 않지만, 두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야기한 슬픔과 고통을, 멕시코 인디오들의 관습을 따라 자신의 인생의 친척으로 받아들이는 긴 여정이 수월할 수는 없다. 작가는 마리에가 온 삶으로 던지는 고난에 대한 질문의 어두운 우회로를 가감 없이 뒤따르며 추정하고 해석하고 서술한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낡을 줄 모르는 감지능력을 지닌 마리에. 그녀 고유의 고통의 나눔 방식, 즉 고통을 겪는 타자들의 인생의 친척이 되는 방식에서 독자는 그녀의 삶이 다다른 먼 멕시코 산간의 가난한 농장 마을에서의 말년에 드리워진 십자가의 짙은 그림자를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열망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고통까지 모방한다. 그게 마리에의 삶이다. 비록 작가 자신은 그 사랑의 신비를 납득하지 못했다고 고백해도, 그 또한 마리에의 인생의 친척임이 분명하다.

최윤 (소설가·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