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Runway)는 그렇게 멀어졌다. 2006년 미 명문 뉴욕패션스쿨(FIT) 졸업생 중 취업 비자(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를 신청하지 않은 외국인은 조고은(33)씨뿐이었다. 교수들은 그가 OPT를 신청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게다가 조씨는 우등 졸업생이었다. 그는 귀국해 결혼하고 딸 둘을 낳았지만 패션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 디자인 도안을 그렸다. 파리 도쿄 뉴욕 서울에서 열리는 컬렉션에 출품했다. 독창적인 그의 옷에 유럽 북미 아시아 바이어(Buyer)가 반했다. 2009년 자기 이름을 따 의류브랜드 ‘GOENJO’(고은조)를 만들었다. 조 GOENJO 대표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최선을 다 합니다”
지난 16일 오전 GOENJO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조씨의 서울 성동구 작업실을 찾았다. 옆 방은 남편인 서양화가 이성수(39) 화백의 작업실이었다. 조 대표가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코트리(COTERIE) 준비하느라 작업실이 좀 정신 없죠?” 그는 지난해 이어 올해 9월에도 미 뉴욕에서 열리는 패션 코트리에 참가한다. 코트리는 세계 최대 패션전문전시이다.
“FIT 다닐 때 한국대학생선교회(KCCC) 뉴욕지부에서 활동했어요. 전남주 목사(뉴욕 대표)님에게 ‘패션을 전공하는 제가 어떻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 된다’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전목사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지요.”
그의 시어머니는 드맹패션을 설립한 1세대 패션 디자이너 문광자(67·광주동명교회) 권사이다. 문 권사는 성경공부를 함께 했던 전 목사에게 막내아들(이 화백)의 신붓감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전 목사가 조 대표와 이 화백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화백도 서울대 조소과 재학시절 조 대표처럼 CCC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은 2005년 만남 직후 결혼을 결심했다. 신앙관과 인생관이 비슷했다. “미국 취업에 미련을 둘까봐 OPT비자를 포기했어요. 근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제 꿈을 포기한 것 같아 참 우울했어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5년만 기다려봐. 애들 다 크고 너 하고 싶은 일 실컷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조 대표는 사실 그 말을 들으며 울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면서 놀았고 고3 때 우연히 본 패션쇼 런웨이에 홀려 유학을 갔어요. 근데 점점 거기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두 딸 다에(5)와 다인(3)이가 24개월 될 때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 조 대표는 두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는 동안에도 일을 놓지 않았다.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딱 주어졌어요. 신기하게도.” 빙그레 웃었다. 살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집안에서 디자인을 했다. 2011년 이태리 스포츠 브랜드 LOTTOSPORT와 협력해 콜라보래이션(collaboration, 협업) 라인‘LOTTO by goenjo’를 출시했다. LG생활건강의 유니폼 디자인에 참여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잠들면 그때부터 책상 앞에 앉아 새벽까지 디자인을 했어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다 훈련 과정이었죠.”
그는 행복한 아이를 위해서는 먼전 행복한 엄마가 돼야 한다고 여긴다. “몇 시간이라도 제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패션은 저의 정체성이에요.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행복하게 키울 수 없는 것 같아요.”
“계획이 없습니다”
그는 옷을 좋아하고, 옷을 잘 만든다. FIT 재학시절 엘리 타하리, 마리 코네조 등 뉴욕 본사 둔 패션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국제 무대에 옷을 선보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후스 넥스트 트레이드쇼 컬렉션(2010),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패션 페어컬렉션(2011), 미 뉴욕에서 열린 패션 코트리(2013)에 나갔다. 코트리는 강남구 지원 사업이었다.
파리 컬렉션을 본 스위스 바이어, 뉴욕 컬렉션을 본 미국과 홍콩 바이어가 납품을 요청했다. 조 대표의 옷은 뉴욕의 ‘Swords-Smith’나 홍콩의 ‘Twist’와 같은 유명 패션 숍 옷걸이에 걸려 있다.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협업을 해봐서 회사도 차리고 해외 진출도 하게 된 것 같아요. 하나님이 만나를 조금 떼어주듯 단계별로 일을 주시는 것 같아요.”
최근에도 이런 경험이 있다. “코트리 참가에 재정 등 여러 어려움이 있어 포기하려고 하는데 미국 에이전트사 관계자가 CCC에서 만난 친구들이었어요. 제 이름을 보고 일을 맡기로 했다고 해서 제가 다시 용기를 냈어요.”
그의 옷은 계절 별로 수 백 벌씩 해외로 수출된다. 국내 백화점 입점도 논의 중이다. “브랜드가 정착되면 대중적인 세컨드 브랜드 출시를 고려해요. 하지만 따로 계획을 세우진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이에요.”
고급 신진 브랜드 GOENJO 대표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뭘까. “‘정직’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유혹이 많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과는 다른 원칙 ‘정직’을 가장 우선시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요즘 시편 131편을 자주 묵상한다. “제가 빨리 알려지는 것 같아 두려워요. 교만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와요. 겸손하게 정직하게 일하려고 해요.”
조 대표 부부는 CCC 선교사 4명과 컴패션을 통해 어린이 4명과 결연을 맺고 있다. 이미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조고은 대표
△2006년 미 뉴욕패션스쿨(FIT) 졸업 △2009년 패션브랜드 'GOENJO' 대표 겸 디자이너 △2010년 프랑스 파리 후스 넥스트 트레이드쇼 컬렉션 참가 △2011년 이탈리아 브랜드 'LOTTOSPORTS'와 콜라보레이션 라인 출시 △2013년 뉴욕 코테리 전시컬렉션 참가 △2014 서울 컬렉션 'Generation Next' 참가
[기독여성CEO 열전] (27) 조고은 GOENJO 대표
입력 2014-07-2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