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헬기 광주 도심 추락] “아파트·학교 피하라” 최후의 사투… 대형 참사 막았다

입력 2014-07-18 03:00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된 강원도소방본부 소속 헬기가 17일 오전 광주 광산구 수완지구 아파트 단지 옆 인도에 추락했다. 소방대원들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고 헬기가 사고 전 춘천에서 인명구조 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추락을 직감한 50대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부여잡고 헬기를 아파트 단지와 학교 사이의 녹지대로 몰았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된 강원도소방본부 소속 헬기(AS365-N3)가 광주 장덕동 수완지구 부영아파트 206동 인근에 17일 오전 10시53분 추락했다. 연료를 가득 채운 헬기가 폭발하면서 기장 정성철(52) 소방경 등 탑승자 5명 전원이 숨졌다. 4∼5m 옆 버스 정류장 구조물 안에 있던 여고생 박다은(18·성덕고3)양은 강화유리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나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추락한 지점은 1360여명의 성덕중학교 학생들이 오전수업을 받고 있던 성덕중 교실과 10여m 거리에 불과했다.

헬기가 정해진 항로를 약간 벗어난 것으로 알려져 헬기 조종사가 아파트와 학교를 피해 인적이 드문 곳에 추락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목격자 박모(50)씨는 “저공으로 선회하던 헬기가 학교와 아파트 인근 공터로 떨어졌다”며 “조종사가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학교와 아파트 등을 애써 피해 추락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군 관계자는 “비행기나 헬기 조종사들은 비상상황 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훈련을 평소 받는다”며 “비행 중 기체 이상이 발생했고 정해진 항로에서 약간 벗어나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곳으로 추락을 유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헬기는 지난 4월 29일부터 세월호 사고해역에서 수색지원 임무에 투입됐다. 진도 팽목항 해역의 기상악화로 유실물 수색작업을 포기하고 광주비행장에서 주유·정비 작업을 마친 뒤 강원도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사고 당시 광주에는 시간당 3.5㎜의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헬기 운항에 큰 지장이 없었다. 광주기상청은 “시간당 강우량이 조금 많았지만 흐리고 비가 오던 중으로 기상악화로 인해 헬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륙 4분 만에 추락한 점으로 미뤄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 징후를 보인 지 1분 만에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관제를 담당한 공군 제1전투비행단은 추락 시각 1분 전인 오전 10시52분 사고 헬기가 지상 700피트(210m)로 저공비행하는 것을 확인하고 기수를 올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헬기는 700피트 이상으로 기수를 올렸다가 곧바로 다시 700피트 아래로 저공비행했다. 이어 1분 만인 오전 10시53분 레이더에서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1분간 이상 징후가 나타났는데도 기체를 올리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목격자들은 헬기가 저공비행을 하다 추락 직전 4∼5초가량 프로펠러 굉음을 내며 선회한 뒤 기체 앞부분부터 거의 수직으로 꼬꾸라지듯 추락했다고 전했다. 사고 헬기는 지난 7일 정비 점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락한 헬기는 2001년 8월 프랑스·독일이 합작한 헬리콥터 생산업체 유로콥터(Eurocopter)에서 도입됐다. 14명까지 탑승할 수 있으며 1158ℓ의 연료를 싣고 최대 860㎞를 3시간30분에 걸쳐 운항할 수 있다. 기체는 길이 11.6m, 넓이 2m, 높이 3.8m 규모로 인명구조용 ‘더핀(Dauphin)’ 기종이다. 헬기 도입가격은 대당 122억원으로 전해졌다. 소방방재청은 사고 헬기와 동일기종의 운항을 잠정 중지했다.

사고 헬기와 동일한 기종이 전국 시·도 119본부에 3대 더 배치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강원도소방본부를 통해 사고 헬기에 블랙박스가 장착된 것을 확인했다. 동체 꼬리 쪽에 있는 블랙박스는 조종실음성녹음장치(CVR)와 비행자료 분석장치(FDR)가 한 상자에 들어있는 일체형이다.

블랙박스는 통상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30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으나 사고 당시 동체가 불에 탄 만큼 손상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길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사무국장은 “사고조사의 핵심은 블랙박스 분석”이라면서 “블랙박스의 손상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 국장은 “조사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