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정치 1번지’ 수원은 7·30재보선의 '태풍의 눈'이다. 이곳 지역구 3곳(삼각 벨트)의 선거 결과는 재보선 전체 승부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여검사 출신 간 대결, 정치 거물과 신인의 대결, MBC맨과 MB(이명박)맨의 대결 등 볼거리도 여간 풍부하지 않다. 어떤 후보도 '따 놓은 당상'처럼 보이는 이는 없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여야 후보들이 바쁘게 지나간 발자국에는 긴장감마저 묻어 있었다.
與 새누리당은 3선 의원 출신에 높은 인지도를 가진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필두로 정치 신인 김용남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 정미경 전 의원의 '삼각 편대'를 갖췄다. 세 후보 모두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거나 인연이 깊어 '지역 참일꾼론'을 내세우고 있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새 지도부 선출 후 첫 수원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 후보들을 '갑자기 날아든 정치 철새'로 규정하면서 "누가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판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수원정(영통) 내 유일한 전통시장인 매탄시장의 50여개 점포를 일일이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다. 임 후보의 첫 인사는 "지난번에 뵈었죠?"였다. 지금까지 그는 후보등록 이후 매탄시장을 네 번이나 찾았다고 했다.
임 후보는 한 해산물 가게에 들러 "생선가게 옆에 옷가게가 있고, 그 옆에 야채가게가 있다"며 "이래서 사람들이 찾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긴급자금을 지원해서라도 점포를 품목별로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상인회장 김영섭씨는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가게마다 권리금과 규모, 위치가 다 달라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지역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전 의원이 17대 때부터 내리 3선을 한 곳이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어 고학력·젊은층이 두텁고 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영통에서 김 전 의원에게 16% 포인트 이상 뒤졌다.
실제로 젊은 유권자들은 "무조건 2번을 찍겠다"고 했다. 시장에서 만난 30대 주민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와도 죽어라 뛰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소속 정당을 떠나 지역 현안을 해결할 '힘 있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임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주민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만큼은 (내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면서 "저는 정치 후보가 아니라 정책 후보"라고 강조했다.
수원병(팔달)은 남 지사가 5선을 한 지역이다. 수원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무엇보다 토박이 정서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은 이곳에 40대의 김용남 후보를 내세웠다.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모두 나온 수원 토박이다.
김 후보는 팔달문시장 출정 유세에서 "새정치연합 손학규 후보와 저는 22살 차이가 난다"면서 "손 후보는 선거를 위해 수원에 내려온 정치인이고, 저는 수원을 위해 선거에 나온 일꾼"이라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선주자급인 손 후보와의 선거전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세에는 김무성 대표와 이인제 최고위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참석해 힘을 보탰다. 김 대표는 "손 후보는 중앙당에서 내리꽂다시피 한 하향식 공천의 대명사지만 김 후보는 수원 시민이 선택한 후보"라며 김 후보를 업고 압도적 지지를 당부했다.
여검사 출신 정치인의 대결로 유명한 수원을(권선)에 나선 정미경 후보는 지지세가 탄탄하다는 게 강점이다. 18대 때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19대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23.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 후보는 이날 밑바닥을 훑으면서 일대일로 시민들을 만나는 조용한 선거전을 펼쳤다. 이어 권선 이마트 앞 사거리에서 출정식을 갖고 "18대 때 발로 뛰며 주민들을 만나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너무 잘 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권선은 16∼19대 국회까지 여야가 2대 2로 무승부를 기록해 어느 쪽도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다.
수원=권지혜 기자 jhk@kmib.co.kr
野 새정치민주연합은 각각 '겸손(손학규)' '정책(박광온)' '공감(백혜련)'을 키워드로 내걸고 표심 공략에 나섰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뒤지는 추세를 의식한 듯 세 후보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수원병(팔달)에 출마한 손 후보는 여전히 '경기도 대통령'이라 불릴 만했다. 17일 오전 10시 서둔동주민센터 내 문화센터를 찾아가자 주민들은 손 후보를 반갑게 맞이했다. 20, 30대 청년층은 TV에서 많이 봤던 그를 접하자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년층으로 갈수록 반응이 더 좋았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박모(78·여)씨는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팬이었다. 대통령 하셔야 할 분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다"고 했다. 새누리당 텃밭인 이곳에서 손 후보의 선전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손 후보는 행인들에게도 다가가 다정하게 악수를 청했다. 식당과 관공서에서는 앉아 있는 시민을 향해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손 후보 측은 당분간 유세차와 마이크 등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2011년 경기도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톡톡히 효과를 봤던 방식이다. 손 후보 캠프 관계자는 "시민 눈높이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시민들을 만나지 않으면 수원 출마의 진정성을 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수원정(영통) 박광온 후보는 정책 대결에 시동을 걸었다. 이 지역 현안인 교통문제 해결이다. 박 후보는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수원 황골마을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만났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인근인 황골마을 유권자들 가운데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유독 많다. 전날 시행된 수도권 광역버스 좌석제로 출근길에 불편을 겪은 시민들은 박 후보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박 후보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쫓기는 주민들을 위해 교통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경기도의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광역급행 버스 노선의 신·증설, 공영주차장 건립, 수원·서울을 잇는 급행 지하철 도입 등 '영통에서 서울까지 30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박 후보는 교육과 보육, 주거 등 민생 정책을 계속 발표할 계획이다. 관심도가 높은 서민 이슈를 파고들어 인지도를 높이고, 참신한 정치 신인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임태희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나쁜 관행과 잘못된 통치철학, 국정 운영방식이 4대강 환경 파괴와 무능력한 조직문화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세 후보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열세인 수원을(권선) 백혜련 후보는 환경미화원과 여성, 골목상권 상인 등을 찾아가며 '공감' 행보를 시도했다. 환경미화원들의 근무환경, 여성들의 보육 문제, 골목상권 붕괴로 인한 경제적 고통 등에 귀를 기울였다. 백 후보 측은 "하루 2%씩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수원정에서 새누리당 임 후보, 새정치연합 박 후보와 대결을 펼치는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부족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버스정류장 대형마트 아파트상가를 쉼 없이 찾아 다녔다. 천 대표와 박 후보는 오후 영통구 효원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두 후보는 서로에게 "반갑습니다" "파이팅 하세요"라고 격려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천 대표는 기자와 만나 "야권연대가 필요하지만 두 대표(안철수·김한길)의 리더십으로는 (야권연대를) 이루기 힘들 것 같다"며 "지금으로서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수원=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수원 벨트’ 잡아야 승자… 與野 첫날부터 총력전
입력 2014-07-18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