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과 동등 지원” 밝히자… 北, 퇴장

입력 2014-07-18 04:25
권경상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과 손광호 북한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겸 서기장(오른쪽 두 번째)이 17일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인천아시안게임 선수단 참가 및 응원단 파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남북 체육 실무접촉이 열린 것은 2008년 2월 베이징올림픽 공동응원단 파견 협의 이후 6년5개월 만이다. 통일부 제공
남북이 17일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북한 선수단의 9월 인천아시안게임 참가 및 응원단 파견 문제와 관련해 실무접촉을 갖고 세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합의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마지막 회의에서 북한은 우리 측의 회담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언한 뒤 퇴장해 후속 실무접촉 날짜도 정하지 못했다.

북한은 오전 전체회의에서 선수단 및 응원단 규모와 이동 경로 등을 우리 측에 제시했다. 선수단, 응원단은 각각 350명으로 모두 합쳐 역대 최대 규모를 제시했다. 또 선수단 350명은 서해 직항로를 통한 전세기로, 응원단 350명은 개성을 거치는 경의선 육로로 입경한 뒤 만경봉 92호를 인천항에 정박시켜 응원단 숙소로 이용하겠다고 했다. 체류비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 없이 제반 편의 제공을 요청했다. 아울러 경기진행과 관련해선 남북 선수가 같이 출전했을 때 공동 응원을 제안했다. 개·폐회식 선수단 공동 입장, 단일팀 구성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우리 측은 체류비용에 해당되는 제반 편의 제공 요청과 관련해 "국제관례와 경기규정에 따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본 방침을 전달한 뒤 "구체적인 것은 협의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회담 관계자가 밝혔다.

그간 정부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도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다만 남북관계 특수성을 감안해 대규모 응원단이 내려올 경우 숙소 등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전례대로 전폭적 지원을 기대한 북한과 우리 정부 사이에 입장 차가 확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전 회의 종료 후 4시간이 넘도록 오후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오후 전체회의는 4시15분 속개됐으나 30분 만에 끝났다. 우리 측은 대회 준비 차원에서 북측에 선수단과 응원단 구성에 대한 세부 사항을 하나씩 확인했고, 북측은 구체적인 사항은 서면으로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비슷한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다가 회의가 정회됐고, 이어 5시30분 재개된 마지막 회의에서 북측은 "남한 측의 태도는 회담 파탄행위"이며 "오늘 회의는 결렬"이라고 선언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담 관계자는 "오전 회의 때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에 대해 환영 입장을 표명했고, 북측의 제안을 주로 청취했다"며 "오후 들어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해 나가자 북측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담 결렬에 대해 "북한의 일방적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북한의 대회 참가를 기대하는 만큼 정부가 후속 실무접촉을 위한 선(先)제의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무접촉에 나선 북측 인사는 손광호(54)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겸 서기장과 장수명, 고정철 등 3명이다. 수석대표인 손 위원장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체육성 부상(차관)을 역임하는 등 북한 체육계의 실세다. 아버지 손길천도 1970년대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바 있어 자리를 대물림한 셈이다. 장수명 체육성 부상도 정통 체육계 인사다. 고정철은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추정된다. 우리 측 회담 대표인 김영일 아시안게임조직위 자문위원이 통일부 사회교류과장이어서, 남북 당국의 대리인 격으로 나온 셈이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