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기준 516조원(3월 말 현재)에 이르는 사내유보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압박하자 재계가 반격을 시작했다. 재계 논리는 간단하다. 사내유보금은 쓰지 않고 보관해둔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부에 적힌 숫자일 뿐이며, 투자를 마친 유·무형의 자산이라고 항변한다. 이미 투자를 했는데 그 돈으로 다시 투자를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재계는 한발 더 나아가 투자하라고 옥죄지만 말고 규제를 풀어줘야 뭐라도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한다.
예상 밖의 거센 저항에 정부는 당황한 눈치다. 취지가 왜곡됐다며 한발 물러섰다. 강제로 사내유보금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고 투자, 고용, 가계소득 증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계와 정부의 시각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가장 큰 틈은 사내유보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정부는 그동안 법인세를 깎아주며 지원사격을 했는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쌓인 돈이 사내유보금이라는 판단이다.
재계 생각은 다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대행은 17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 인사말에서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비판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아니라 주요 자산의 장부상 숫자가 사내유보금이라고 덧붙였다. 대부분 공장, 기계설비, 부동산, 영업권 등에 투자된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사내유보금을 줄이라는 것은 기업이 투자한 공장과 기계를 처분하라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경총에 따르면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가운데 현금성 자산(현금, 현금등가물, 예금 등 단기금융상품)의 비중은 2012년 기준 15.2%(67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생각하는 ‘투자, 고용 등에 바로 풀 수 있는 돈’은 전체 사내유보금의 15%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사내유보금을 풀었을 때 나타날 효과를 놓고 재계와 정부는 정반대로 얘기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내유보금 과세는 내수 증대보다는 장기적으로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부적절한 정책”이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전경련은 이미 세금을 낸 잉여금에 다시 세금을 물리는 이중과세로 기업의 재무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법인세 증가 효과를 가져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배당 확대로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서는 국부가 유출된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내고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비상장법인의 배당 회피를 막으려고 1991년 도입됐지만, 효과는 미미한 반면 이중과세라는 비판이 제기돼 2001년 결국 폐지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배당소득세를 회피하려는 주주를 징벌할 목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재계가 오해하고 있다며 공세의 강도를 낮췄다.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 측면보다 과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기업들이 곡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 새벽 인력시장을 방문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들이 과도하게 사내유보금을 쌓아 경제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면서도 “사내유보금을 풀도록 유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 세수 확대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정부-재계, 사내유보금 논란 가열] 재계 반격 “장부상 숫자일 뿐” 정부 시각 “세금 깎아줘 쌓인 돈”
입력 2014-07-18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