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목소리도 나오는 대학으로 변화시킬 것” 학교문화 바꾸기 나선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

입력 2014-07-18 02:30 수정 2014-07-18 15:23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이 16일 총장실에서 성공회대가 다양성을 갖춘 대학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성공회대에서 진보뿐 아니라 보수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양 극단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성공회의 정신입니다.”

16일 서울 구로구 연동로 성공회대에서 만난 이정구(60) 총장은 성공회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거듭 ‘다양성’을 강조했다. 성공회대 구성원 중에는 보수 성향의 교직원과 학생들도 많은데, 사람들이 ‘진보적 대학’으로만 보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성공회대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뒤 신영복 김수행 조효제 한홍구 김민웅 등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인 학자들을 다수 교수로 초빙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성공회대=진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최근 진보 교육감으로 입후보한 조희연 교수와 이재정 전 총장이 서울과 경기도에서 각각 당선돼 성공회대의 진보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이 총장은 “그간의 진보적 활동이 성공회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하지만 이 때문에 기업의 지원이 끊기고 교회와 마찰을 빚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가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학교 내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우선 학교 내 주요 보직에 성공회뿐 아니라 다양한 교단에 소속된 교수들이 대거 늘어났다. 기초학문 연구와 사회 참여에만 집중했던 교수들의 문화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성공회대는 지난해 ‘정부지원제한대학’의 불명예를 안았다”며 “사회 변화에 발맞춰 융합교육을 실시하는 등 교과과정에도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성공회대가 고유의 문화와 색깔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 총장은 “진보 학자들의 활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학문도 받아들이자는 것”이라며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진보적인 분이셨지만 보수적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화를 꾀하면서도 학생들에게 강조해온 가치인 나눔과 섬김은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이 총장은 “요즘에는 교육 받을수록 측은지심이 더욱 사라지는 것 같다”며 “이웃을 보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대해서도 “현 교황은 종교인이 갖춰야 하는 ‘도덕성’ ‘영성’을 모두 행동으로 보이는 분”이라며 “종교와 가치관이 다르다고 반대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의 실천적 행동을 닮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한신대를 졸업하고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서 성직과정을 마친 후 1987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국 버밍엄대에서 성공회건축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2년 9월 성공회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진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