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네덜란드 38세 여성 디자이너인 브리트 다스는 스스로 ‘자유를 위한 발자국’이라 이름 붙인 1만㎞ 도보 여행길에 올랐다. 티베트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러시아 평원을 가로질러 티베트 라사까지 1만㎞가 넘는 길을 1년 동안 걸어서 갔다. 여행 초기 두 발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루마니아에서는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턱뼈가 부러지는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난의 길만은 아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거나 행운을 빌며 케이크를 주는 등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마약 갱단에 아들을 잃은 시인 하비에르 시실리아는 2011년 5월 정부에 마약정책 전환을 촉구하며 멕시코 중부 쿠에르나바카에서 멕시코시티까지 80㎞를 4일간 걸어서 행진했다. ‘정의와 존엄의 평화행진’이다. 2006년 멕시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멕시코에서는 4만여명이 숨졌다. 멕시코시티에서는 20만명의 시민이 그를 기다렸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는 의미로 낡은 신발이 거리 곳곳에 걸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43명과 학부모 10여명이 그제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1박2일 47㎞ 도보행진을 끝냈다. 하늘로 떠난 친구들의 명찰을 가방에 달고, 친구들의 이름을 노란손수건에 적은 채 걷고 또 걸어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인 친구들의 부모님을 만났다. 아이들은 “많은 친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며 발에 물집이 생기고, 깁스를 하고도, 땡볕도 어둠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일상으로 돌아갔던 시민들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이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빵과 음료를 건네며 말없이 응원했다.
누군가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서 홀로 첼로 연주를 하고, 누군가는 희생자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캐리커처를 그리고, 누군가는 세월호가 사고 나지 않았더라면 정상적으로 도착했을 제주항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고 한다. 형식은 달라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석 달이다. 대통령이 눈물로 약속한 국가 개조는 인적쇄신부터 물 건너갔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성역 앞에서 막혀있다. 자식을 바다에 묻은 부모들이 억울함을 밝혀달라고 곡기까지 끊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한마당-이명희] 1박2일 도보행진
입력 2014-07-18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