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삼 객원편집위원의 現場] 팽목항서 중환자실로 이송 40여일… 세월호 아픔 함께 짊어진 문명수 목사

입력 2014-07-18 03:05

문명수(52) 목사의 막내아들은 고2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또래다. 문 목사는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팽목항으로 갔다.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0여명이 실종됐다는 믿기지 않는 뉴스가 문 목사의 뇌리를 강타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며칠 전 문 목사의 막내아들도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문 목사는 진도교회연합회 회장이다. 사고 다음 날 진도 목회자들과 함께 팽목항을 다시 찾았다. 팽목항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거기 한국교회 천막이 있었다. 그날부터 진도교회연합회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긴급구호팀과 함께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섬겼다. 나중에는 진도교회연합회가 캠프를 맡아 당번을 정해 교단마다 돌아가며 봉사했다. 그러나 문 목사는 매일 당번을 섰다. 그는 하루 한두 시간씩 자며 실종자 가족들을 보듬어 안았다. 그들이 울면 가서 손잡고 울음이 멈출 때까지 함께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과 한숨이 고스란히 문 목사 가슴에 쌓여갔다. 어느새 문 목사도 ‘실종자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두 주를 보내고 문 목사는 쓰러졌다. 정신이 몸을 안고 쓰러졌다. 전남대병원에 입원했다. 평소 몸과 마음이 건강했던 문 목사의 정신과 입원은 가족에게도,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문 목사는 병원에서도 “세월호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문 목사와 의사가 한 면담 일지 대부분은 세월호로 채워졌다.

문 목사의 아내 김금숙(49) 사모가 보여준 면담 일지 2쪽에는 “바닷속에 있는 아이들이 아우성치면서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 먹고 자고 쉬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졌다는 내용도 있었다. 문 목사는 한 달 후 퇴원했다. 담당의사가 당분간 뉴스 보지 말고 팽목항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문 목사는 퇴원하자마자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 가서 또 전처럼 실종자 가족들을 한 주간 섬겼다. 그러다 또 쓰러졌다.

문 목사는 지금 아산병원 서관 내과계 중환자실Ⅱ 9번 침대에서, 오늘로 20일째 패혈증으로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 산소공급기에 의지해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그마저 어려워 인공호흡기 장착을 위한 기관지 절개술을 고려하는 상태다. 최근 의식을 약간 회복해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표현을 하는 정도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문 목사는 1988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진도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그가 시무하는 만나교회도 어머니와 함께 개척한 몇 개의 교회 가운데 하나다. 김 사모에 따르면 문 목사는 어렵게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만있지 못한다. 집에서 쓸 물건을 찾다 없으면 십중팔구는 문 목사가 누구 가져다준 거다. 김 사모가 남편에게 제발 살림은 손대지 말아 달라고 사정할 정도다.

문 목사 가족은 이런 상황에도 세월호 가족들 걱정이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타고 힘들겠어요.” 병원 의자에서 1주일을 보낸 문 목사 가족, 지금은 한 교회가 마련해준 병원 근처 옥탑방에서 지낸다. 대학 2학년인 둘째 딸 안나가 엄마 곁에 있다. 문 목사 가족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러다 아빠 돌아가시는 거 아니냐”며 엄마 앞에서 운 안나지만, 지금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봉사한 것이 존경스럽다”며 “아빠가 제일 자랑스럽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빠를 처음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린 막내아들에게 엄마는 “하나님께서 아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일하라는 것이고, 생명을 거둬 가시면 아빠는 천국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아들은 눈물을 닦았다.

문 목사가 아산병원에 입원한 지도 40여일이다. 한 달 병원비가 1900만원 나왔다. 1300만원을 냈다. 의료실손보험을 들었지만 보험료를 내지 못해 실효됐다. 못내 아쉽지만 되돌릴 순 없다. 김 사모는 “지금은 그래도 여기저기서 도와줘서 감당할 수 있는데 치료 기간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며 “장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많이 힘들다”고 했다. 믿음의 여인도 아내고, 세 아이의 엄마다. 안나는 “아빠가 완쾌되면 아빠와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한번도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어서…”라며 이유를 설명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한국기독교 연합봉사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