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귀향

입력 2014-07-18 02:17

나는 지금 긴긴 여행 중이다. 출발은 분명하지만 끝나는 지점은 한량없는 기나긴 여정, 그 시작쯤이 아닐까 싶다. 운 좋게도 좋은 길동무도 있어 든든하다. 이 진지한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나의 고향, 나의 몸이다. 나는 돌아온 탕아가 되어 때로는 눈물로, 아픔으로, 미소로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간다.

출발지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깨였다. 길을 나설 때 늘 필요 이상의 짐을 짊어지고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자세도 좋지 않아 어깨가 앞으로 쏠려 있었다. 무엇보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암암리에 어깨를 침몰시키고 있었다.

한의학에서도 어깨는 인체의 여러 흐름이 오가는 관문이라는데, 어깨가 굳자 몸의 다른 곳들이 철커덩 문을 닫아버리는 듯했다. 목 얼굴 팔 가슴이 경직되고 자세가 움츠러들었다. 자연히 호흡도 가슴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다. 상체와 하체의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연결이 끊기고 따로 놀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마음이 굳어지고 생활도 딱딱해져 갔다. 뭐가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삶에 대한 탄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감과 의욕의 상실이었다. 생의 에너지가 한없이 고갈된 듯했다.

사방이 벽에 갇힌 듯한 그 순간 춤이 한줄기 빛처럼 스며들었다. 운 좋게도 좋은 인연들을 만나 춤이 우리 몸의 감각을 깨우고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방송에 나오는 현란한 댄스나 발레리나의 정교하고 우아한 그런 춤은 아니었다. 되레 범접할 수 없는 전문성은 나를 더 위축시킬 뿐이었다. 누군가에겐 어색한 몸짓과 엉거주춤, 정교하지 않은 흔들림일지 모르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몸의 각 부위를 알아차리고, 그곳에 담긴 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면 내겐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춤이 될 테니까.

발바닥으로 바닥을 느끼고 천천히 숨을 고른다. 온몸을 관통하는 척추의 단단함을 따라 몸을 움직여본다. 온전히 몸을 탐색하다 보면 나오지 못한 채 잠겨 있던 나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미세한 동작 속에, 길지 않은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짊어지고 있던 숱한 긴장들을 만난다. 몸을 탐색하며 그것을 나만의 춤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은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과 닮았다. 어느 하나 같은 움직임이 없고, 그렇기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래서 고향을 찾아가는 이 여행에서, 우린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