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팬택은 사선(死線)을 헤치고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두 번째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을 받고 있는 팬택의 500억원 규모 상거래 채권 만기일이 25일로 다가왔다. 시장에서는 첫 번째 워크아웃을 반등의 기회로 만들었던 팬택이 이번에도 반전 드라마를 쓸지 주목하고 있다.
팬택의 생사 여부는 출자전환 카드를 쥐고 있는 이동통신 3사의 손에 달려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이동통신 3사가 1800억원가량을 출자전환한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팬택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의 마음을 돌려 경영 정상화까지 이르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극적 회생했던 팬택, 왜 다시 수렁에 빠졌나
1991년 자본금 4000만원으로 시작한 팬택은 승승장구하다 2006년 첫 워크아웃을 겪는다. 실적 하락이 이유였다. 당시 유동성 위기에 빠진 팬택은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대출, 회사채 등으로 1조3971억원의 빚을 끌어안고 있었다.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은 직접 투자유치에 나서는 동시에 2010년 스마트폰 ‘베가’ 브랜드를 시장에 내놨다.
승부수는 통하는 듯했다. 기술과 디자인에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재도약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한 팬택은 ‘모범적인 워크아웃 사례’라는 평가도 받았다. 18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록을 남기고 2011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팬택은 경영전략, 브랜드 경쟁력, 마케팅 등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팬택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아니다. 팬택이 1차 워크아웃을 끝냈을 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와 애플이라는 두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팬택이 숨을 쉴 틈이 있었다.
그러나 2012년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브랜드 파워, 자금력 등에서 LG전자를 쫓아가지 못했다.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그런데도 팬택은 차별화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다. 기술개발에 따른 비용이 제품에 전가되면서 가격 경쟁력마저 나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 이동통신 3사의 영업정지라는 외부변수가 겹쳤다. 밀린 재고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해외시장 공략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팬택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에서 반응이 좋은 제품을 그대로 팔려다 실패했다.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 비중이 20%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기댈 곳은 없었다.
이동통신사 외면 속에서 기사회생 가능할까
팬택 직원들이 직접 제품 판매에 나서고, 협력업체들이 부품 대금 일부를 받지 않겠다고 나서는 등 ‘팬택 살리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동통신사도 팬택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출자전환을 한 뒤에 추가 지원 없이 회생할 수 있다면 나설 마음도 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돕기가 어렵지만, 팬택이 사라진 뒤 벌어질 시장 지각변동이나 팬택 협력사 타격 등을 생각하면 살려야 할 명분이 크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하다. 이준우 팬택 사장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이동통신 3사의 지원을 받으면 독자생존 할 수 있고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업계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동통신 3사가 팬택을 돕지 않는 것은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SK텔레콤 900억원, KT 500억원, LG유플러스 400억원 등 이동통신사의 돈 1800억원이 팬택에 묶여있다. 이들이 안고 있는 재고 물량은 70만대에 이른다. 한 대당 50만원으로 계산해도 3500억원이다. 출자전환을 해 팬택의 주주가 되면 추가 지원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재고 처리는 여전히 숙제다.
팬택은 지난 15일 출자전환 대신 채무상환 유예기한을 2년 뒤로 연장하고 최소 판매물량을 보장해달라고 이동통신 3사에 요구했다. 이마저도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17일 “출자전환 대신 채무상환 기한을 유예해달라는 요청에도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긴 마찬가지”라면서 “팬택이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알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팬택 사라지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중국 먹잇감”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다시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팬택이 퇴출되면 그 빈자리는 중국 업체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ZTE,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빠르고, 첨단기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좋아서 테스트베드(시험시장)로서 가치가 크다. 전자업계에서는 이미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이나 대만 업체의 거센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을 비롯한 외국 업체가 팬택을 인수할 경우 그동안 쌓아온 기술은 고스란히 빠져나가게 된다. 비록 마케팅에서 실패했지만 팬택의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생체인식기술을 연구해 세계 최초로 지문인식 기능을 스마트폰에 탑재하기도 했다. 문지욱 팬택 중앙연구소장은 “스마트폰 기술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 등에 필요한 여러 기술이 파생되기 때문에 스마트폰 산업은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키워야 하는 산업”이라면서 “팬택은 1차 워크아웃을 받을 때에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할 정도로 기술혁신과 도전정신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또 팬택이 사라지면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이 경쟁하고 있다. 쏠림이 심해지면 경쟁이 약화된다. 결국 소비자와 기업 모두 손해다.
재계 관계자는 “팬택이 주저앉을 경우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줄어들게 되고 관련 기술 발전도 더뎌지게 될 것”이라면서 “1위 업체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벼랑 끝 팬택, 2전3기 희망 없나
입력 2014-07-18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