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기 불꽃으로 영성을 깨웁니다

입력 2014-07-19 02:18
작품 앞에 선 심영철은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셨잖아요(창 3:24). 불칼의 의미를 우리가 모르고 살아요. 예수의 고난과 대속을 보고서도요"라고 말했다.

'용접기를 챙겼다. 전원을 열자 용접기 끝에서 푸른 불꽃이 달아올랐다. 나는 거기에, 그 불꽃에 아이들과 함께할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불꽃처럼 단단히 뜨거워지자고 다짐했다.'

설치미술가 심영철(57·수원대 교수)의 '작가 노트' 중 한 대목이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이기도 한 그는 2010년 '명성황후'를 주제로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만큼 화려한 매혹의 소유자가 심영철이다.

이런 그가 8월 22일까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미디어아트 설치전 ‘춤추는 정원’에서 창조의 섭리를 얘기하고 있다. 불꽃처럼 뜨거운 그의 작품이 우리의 영성을 깨운다.

지난 14일 제주현대미술관 전시실. 면류관을 쓴 예수가 하늘을 간절한 호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상이 흰 기둥에 비치고 있었다. 어른 한 사람이 팔을 벌려 감쌀 크기의 기둥이다. 그 기둥 하단에선 붉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예수 얼굴에까지 불꽃이 미친다. 관람객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고난의 예수다.

“불멸의 예수시죠. 고난을 이겨낸…. 그의 사랑이 예술인 걸 몰랐죠. 우리가 그를 불태우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아버지를 십자가에 매달았고, 태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춤추는 정원’은 작가가 20대부터 해온 작업부터 현재까지다. 그런데 이를 꿰뚫는 이치가 드러나 있다. 크리스천 관람객이라면 한눈에 알아본다. 원죄 의식의 표현이다. 실낙원에서 쫓겨난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순종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춤추는 정원’을 잃어버렸다.

“불순종이 뭐겠어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과 교만 아닐까요? 에덴동산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인데 우리가 이를 팽개쳤어요. 우주의 자궁이 열리는 것과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한 이 모든 것은 작가에게 주어진 궁극에 대한 물음이죠.”

그는 ‘일레트로닉 가든’ ‘모뉴멘탈 가든’ ‘시크릿 가든’이란 이름으로 관객 동선을 이끈다. 창조와 부활을 담았다. 용접으로 빚어진 스테인리스 스틸에 네온조명과 홀로그램 등이 투영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다가오는 미래’를 엿 볼 수 있다.

작품 ‘아이들과 함께할 미래’는 연단 받던 시절 교회당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자복했던 그 여인, 심영철의 기도다. 자식을 가진 여인은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조계사 뒤편 수송동이 어린 시절 살던 동네였어요. 유복한 집 막내딸이었어요. 늘 남들이 부러워하는 에나멜 구두를 신었죠. 예수를 몰랐고요. 난초 같은 어머니와 사업가인 아버지가 스무 살 무렵까지 사랑으로 보호해주셨고요. 당시 내로라하는 의상 디자이너인 언니(심영복 목사·수원 아름다운교회) 영향으로 전 늘 화려했죠. 그런데 그게 도도해 보였나 봐요. 나는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건데요.”

심영철은 ‘주어진 삶’ 즉 화려한 모습으로 이름 석자면 알 재벌가와 혼인했다. 그러나 젊은 새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흑암’이 시작됐다. 아니 흑암은 있었고 젊은 시어머니로 발화됐을 뿐이라고 한다.

“돈 있는 이들 집안은 왕조의 권력 싸움이에요. 돈 앞에 부모고 형제고 없어요. ‘막장 드라마’가 근거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새시어머니가 자식을 낳았어요. 우리 아이들의 어린 고모죠. 우리 아들과 딸은 어린 고모를 씻기고 돌봐야 했죠. 남편은 늘 어정쩡한 자세였고요.”

심영철은 그 가문에서 밀려나왔다. 갈 데가 없었다. 친정집으론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교회나 들어갔다. 찬 바닥에 엎드려 죽음과 싸웠다. 교수였고, 화가였고, 재벌가 며느리였으나 사랑이 없다면 흙먼지보다 못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자식인 우리 때문이었죠. 저는 자식을 위해 용접기를 들었어요. 당신의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걸 그때 알았고요. 사랑 있는 가정이 천국입니다. 예수가 있는 집이 천국이죠.”

심영철은

수원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성신여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했다. 미국 UCLA 오티스 파슨스 등에서 수학.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등에서 작품 소장. 석주미술상 등 수상. 한국미술협회 미디어분과위원장. 수원 아름다운교회를 섬기며 '상처 받고 사는 여인'들의 미술 치유에 힘쓴다. 아들이 뮤지션 김현기, 딸이 예술경영 기획자 김민지이다.

제주=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