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스토리를 특유의 서사로 뻔하지 않게 풀어내… 그 속엔 묵직한 울림
이름은 린다, 나이는 서른하나, 키는 173㎝, (남편의 무한한 아량 덕분에)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는 여자다. 그녀에겐 멋진 남편과 '삶의 이유'인 아이들도 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인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는 일간지 기자다. 세계적인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67)의 새 소설 '불륜'의 주인공이다. 도발적인 제목과 주인공의 프로필에서 독자들은 상상할 수 있다.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그렇다. 짐작은 틀리지 않는다. 완벽한 삶을 살아가던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성이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불륜이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숱한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 봐 왔듯이 린다는 위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을 것임에 틀림없다.
문체는 경쾌하다. 서른한 살 여성의 심리묘사가 대단하다. 마치 그 여자가 된 듯,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치밀하다. 이렇게 감각적이고 섬세하고 현실적인 내면을 일흔에 가까운 ‘할아버지’ 작가가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주인공 린다는 ‘남자들에게는 욕망을, 여자들에게는 질시를 불러일으키는’ 여자다. 일과 가정이 완벽하게 세팅됐지만, 그녀는 모든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버릴 수 있는지도 안다. 그래서 좀처럼 잘못된 발걸음은 내딛지도 않는다. 삶에 큰 열정은 없지만, 그 나이에 열정이 없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교통사고처럼 운명적으로 만난 건 아니었다. 그는 인터뷰 때문에 만난, 알고 싶지도 않은 정부 정책을 늘어놓는 정치인이다. 고등학교 때 잠깐 사귀었던 사이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 사무실 문을 잠그더니 되돌아와 린다에게 키스를 했다. 시작은 그랬다. 린다가 중요하게 여기던 규칙은 깨졌다. 그래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죄책감은 전혀 안 드는데 들킬까봐 겁이 좀 났다.
린다는 그 남자를 몰래 만나며 설렌다. 상심한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그와 만나면 그를 처음 알았던 열여섯 소녀로 돌아가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아내. 이럴 수가! 부러우면 지는 건데 완벽하다. 대학교수라는 이 여자, 파리 최고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다. 품위가 흘러넘친다. 진한 화장도 필요 없다. 린다는 문득 결심한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남자도 예전 같지 않다. 냉담하다. 게다가 남편도 눈치를 챈 것 같다. 린다의 우울증도 심해진다.
이 소설은 불륜을 소재로 하지만, 한 여성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결국 자기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한 유부남과의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현실로 맞닥뜨리면서 린다는 한 단계 성숙해진다. 그래서 린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 내면의 속삭임이 된다. ‘사람들이 함부로 보고 이용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소설 속 린다 같은 우리를 위로한다.
제목 이야기를 해보자. 영어로는 어덜터리(Adultery), 한국어로 불륜. 자극적이고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우려를 낳았다.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늘 작품을 통해 ‘위험을 감수하라’고 말해온 작가는 이 제목을 밀고 나갔다. 앞서 출간된 포르투갈, 프랑스 등 6개국에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영국 미국 등 출간될 40여개국에도 이 제목으로 나온다.
작가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성(性)적 관계가 아닌,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책은 단숨에 읽힌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시원한 공간에서 책을 펼쳐보자. 흥미로움에서 시작된 소설 읽기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묵직한 교훈 하나를 던져준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책과 길] 위험을 감수한 코엘료, 불륜을 논하다
입력 2014-07-18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