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결혼하셨어요?"(김희정 장관)
"네, 딸이 세 살이에요."(기자)
"(딸은) 어디 보내세요?"
"친정엄마가 봐주세요."
"어머∼, (엄마랑) 떨어져 사세요? 아니면 집에 같이?"
"5분 거리여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세요."
"아∼, 어린이집은 만 3세 이후에 보내라고 권하던데…. 저는 두 아이 다 돌 지나자마자 보냈어요."
"장관 되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계속 어린이집 보내야죠. 어린이집 문 여는 시간이 오전 7시 반인데…."
김희정(43)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육아 수다'는 이렇게 시작됐다. 장관으로 처음 출근하는 16일 아침 '기습' 인터뷰라도 해보려고 서울 마포구 집 앞에 갔는데, 여기자가 와 있는 걸 보더니 먼저 "결혼은 했느냐. 애는 누가 봐주느냐"부터 물었다.
김 장관은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이 있다. 여성가족부에 사상 처음 미취학 자녀를 둔 '워킹맘 장관'이 취임하는 날이었다.
워킹맘 장관의 육아일기
김 장관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33세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다. 이듬해 회사원인 남편(47)과 결혼해 2009년 딸을 낳았다. 2012년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19대 총선에서 재선했고 등원 직후 출산했다. 임기 중 결혼과 출산을 한 첫 국회의원이다.
이날 하필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아이들을 봐주려고 부산에서 친정식구들이 올라왔다. 우리나라 워킹맘이 다 그렇듯 김 장관 가족들은 이런 '동원'에 익숙하다. 친정어머니는 부산에, 파독 간호사였던 시어머니는 독일에 있고, 서울엔 아직 미혼인 동생들이 산다.
-오늘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나오셨어요?(그는 오전 7시가 조금 넘어 집에서 나왔다)
"큰애는 좀 있다 할아버지랑 국회 어린이집에 갈 거예요. 19대 국회 등원하면서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어린이집 대기자가 200명이 넘어서 몇 달 기다렸다 등록했어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아파트 어린이집에 보내요. 이번에 국회에 영아 전담 어린이집이 생기는데 둘째가 대기명단 중 끝에서 두 번째로 간신히 등록됐어요. 장관 업무 생각하면 국회 어린이집 보내는 게 좋아요. 밤 10시까지 돌봐주니까. 하지만 지금 어린이집에 겨우 적응했는데 또 바꾸려니 애한테 정말 미안해…."
이제 국회 대신 세종로 정부청사로 출근하게 됐지만 아이들은 계속 국회 어린이집에 맡길 거라고 한다. 아침 7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봐주는 어린이집을 찾기란 장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육아에는 한국 워킹맘의 노하우가 총동원됐다. 친정어머니, 전일제 돌보미, 직장 어린이집, 가정 어린이집, 시간제 돌보미에 미혼인 동생들 도움까지…. 국내에서 해결이 안 될 땐 시어머니가 독일에서 날아와 한두 달씩 '투입'됐다. 입주 돌보미 빼고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봤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메인 보육자'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3세 이전엔 정서적 안정을 위해 엄마가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주(主)보육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메인 보육자 부재의 고민은 김 장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2009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으로 일하면서 큰애를 낳았다. 이듬해 청와대 대변인으로 옮겼고 1년 뒤 부산으로 내려갔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아이도 어린이집을 옮겨야 했고 매번 몇 달씩 대기 기간이 있었다.
“큰애가 국회 어린이집 입소를 대기하면서 부산 어린이집에 남아 있었는데 충격이 엄청 컸어요. 엄마 아빠가 동생이랑 서울 가는데 자기는 안 데려갔다고.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김 장관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다. 인터넷진흥원장 시절 첫째를 낳자마자 ‘디도스 사건’이 터져 1주일 만에 출근했다. 둘째 낳고 1주일 뒤 국회가 열렸는데 당에서 ‘의원 전원 참석’ 지침을 내려 식은땀 뻘뻘 흘리며 본회의장을 지켜야 했다.
당신 직장의 CEO가 워킹맘이라면
서울 송파구 인터넷진흥원의 여직원 휴게실에는 ‘뭐에 쓰는 물건인가’ 싶은 게 비치돼 있다. 여성이라도 출산 경험이 없다면 생소할 유축기(乳蓄機)다. 이걸로 3∼4시간마다 젖을 유축해 즉시 냉동시키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수 있다. 워킹맘의 모유수유에 꼭 필요한 장비다.
이런 환경을 만든 건 초대 원장이던 김 장관이었다. 그도 두 아이에게 이 방법으로 모유를 먹였다. 해외출장 때도 유축기, 모유저장팩, 휴대용 냉동고를 한 짐 들고 다녔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생각하기 힘든 아이디어로 여직원 휴게실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인터넷진흥원장에 취임하며 직장 어린이집부터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직원에게 주차권을 우선 배정했고, 점심시간은 아이와 보내도록 했다. 탄력근무·유연근무도 권장했다. 그해 인터넷진흥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가족친화경영 대상을 받았다.
첫아이를 힘들게 가진 터라 난임(難妊)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직원들을 위한 ‘런치 아카데미’를 개설해 임신·출산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컴퓨터 앞에서 생활하는 IT 직종은 난임률이 높은 편인데 인터넷진흥원은 거꾸로 출산율이 높아졌다. 김 장관은 “인터넷진흥원장 때 제 별명이 ‘삼신원장’이었어요”라며 웃었다.
워킹맘 장관의 계획은…“저처럼 아이 키우는 사람이 없게 해야죠”
김 장관은 첫째 출산 이후 인터넷진흥원, 청와대, 국회, 여성부로 짧게는 1년마다 직장을 옮겼다. 비정규직·계약직 워킹맘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그는 19대 국회에서 비정규직 여성이 출산휴가를 쓸 경우 그만큼 계약기간이 연장되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를 소득공제해주는 법안도 냈다. 이 법안들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장관이 됐다.
“저처럼 아이 키우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죠. 저는 산후조리도 못하고, 출산휴가도 못 쓰고, 갓 돌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지만 다른 엄마들은 그러지 않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는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여가부에 육아돌보미 실태조사를 제안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기면서 ‘믿고 맡겨도 될까’ 늘 불안했던 경험이 있어 ‘엄마들이 믿을 만한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마침 조사가 거의 마무리돼 이 문제부터 챙겨볼 생각이라고 한다.
김 장관이 며칠 전 아이 어린이집에서 만난 어느 엄마는 축하인사를 건네더니 “저 셋째 임신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정책 해주시는 거죠?” 하더란다. 이번 내각의 유일한 여성 국무위원인 그는 취임식에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여가부가 ‘끊어진 나룻길에서 만나는 배(絶渡逢舟·절도봉주)’가 되자”고 강조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단독-워킹맘 장관과 워킹맘 기자의 출근길 수다] “산후조리 언감생심… 바쁠땐 해외 시어머니에 SOS”
입력 2014-07-17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