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한국기업은 중국이 무섭다

입력 2014-07-17 02:36

2000년대 초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 동방명주(東方明珠) 전망대에서 현지 코트라(KOTRA) 무역관장이 기자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13억 중국 시장을 잡자’며 중국으로 앞 다퉈 달려가던 때였다. 그는 상하이시내를 내려다보며 “저곳은 우리 기업들의 무덤이다. 중국은 개인과 기업, 국가든 일사불란한 전략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멋모르고 왔다가 물건도 못 빼고 도주하는 기업인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들의 웃음 뒤에 감춰진 기질과 속내를 봐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인들은 외자 유치에 목을 매지만 외국인이 중국 땅에 건물을 짓는 순간 그건 곧 중국 자산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외자 기업이 망하면 그 시설은 고스란히 중국 손에 떨어지고, 살아남은 기업도 중국의 룰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으니 볼모가 되는 셈이라고도 했다.

그는 “일부 우리 상사 주재원들이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깔보는데, 아마 10년 뒤면 처지가 바뀌어 우리가 중국인들 비위 맞추느라 비굴하게 굴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업체들, 첨단분야까지 위협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대로 중국은 막강한 구매력과 방대한 시장을 무기로 ‘갑’ 입장에서 외국 기업들과 선진기술, 고급 인력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미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은 첨단 분야 경쟁력에서 우리의 턱밑까지 따라왔고, 상당수 업종에선 이미 추월했다. 삼성전자마저 애플의 고가 전략에 눌리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며 올 2분기 어닝쇼크를 겪었다. 시장이 정체된다면 중국 업체들은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계속 갉아먹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휴대폰에서 넛크래커(nutcraker) 상황인 삼성의 미래 먹거리는 뭘까. 삼성이니까 뭔가 해내겠지만 아무래도 휴대폰만한 캐시카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자동차 분야에서도 외국 업체들을 ‘관리’ 모드로 바꿔가는 분위기다. 중국은 2006년 현대차가 제2공장을 세우려 할 때 허가 조건으로 엔진공장 건설을 통한 엔진기술 이전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결국 현대차는 산둥성에 세타엔진 공장을 설립했다. 지금은 충칭에 제4공장을 설립하겠다고 신청했으나 중국 정부의 느긋함에 애를 태우고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중국 업체들과 하이브리드차를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한 것도 기술이전 요구에 두 손 든 결과로 분석된다. 중국 업체들이 우리나라 자동차 전문가들을 모셔다가 노하우만 쏙 빼먹고 내쫓는 ‘기술사냥’을 해온 지도 오래됐다. 우리의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 철강뿐 아니라 석유화학, 태양광, LED 등 대부분 산업에서 중국의 공세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설 땅 좁아지는 우리 기업들

더구나 중국의 ‘갑’ 행세는 거침이 없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첨단 기술을 충분히 받아들였으니 이제는 중국의 뜻대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려는 단계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최근 중국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과 카카오톡, 미국 야후의 사진공유 서비스 ‘플리커’ 등 외국 업체들의 서비스 접속이 동시에 차단됐다. 자국 업체들을 키우려는 중국 당국의 노골적인 견제로 해석되지만 우리 업체들은 속으로만 앓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하며 미국과 일본 중심의 아시아 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데도 뛰어들었다.

결국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미끼로 세계의 돈과 기술을 빨아들이고, 다시 그 돈의 힘으로 세계를 주무르는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넓은 시장을 갖고 있으니 굴욕적인 자세로 중국에서 장사하게 해 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게 우리 기업들 처지다. 또 10년이 지나면 중국의 위세가 어느 정도일까. 중국이 무섭다.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