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행복한 국방환경 만들기

입력 2014-07-17 02:24

지난달 30일 취임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취임사 가운데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행복’과 ‘국방환경’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방환경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척박하다. 155마일 휴전선을 지키기 위해 매일 밤낮 수천명의 병사들이 굴곡 심한 산길을 오가며 경비를 서야 한다. 지난달 22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22사단 55연대 최전방 일반소초(GOP)에서 발생한 총기사건도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한 관심병사를 투입한 것이 원인이지만 척박한 근무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GOP 근무 병사들은 수개월간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해야 한다. 야간근무조는 아침에 밥을 먹고 애써 잠을 잔 뒤 오후에 깨어 투입 준비를 한다. 경계태세가 강화되면 잠도 제대로 못잘 때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병사가 적응을 못해 경계근무에 투입되지 못하면 다른 병사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GOP뿐만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책임지고 있는 해군 2함대사령부도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고 이후 늘 초긴장 속에서 생활한다. 사실상 행복을 느낄 여유는 없다.

한 장관이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온전한 전투력 발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구성원들의 행복도가 높아질수록 조직의 효율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군은 일반 사회조직과는 다르다. 군은 무력을 사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를 지키는 곳으로 개인보다는 먼저 국가를 생각해야 하고 군인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기본 인식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군 운영방식, 특히 병영문화는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신세대 병사들이 과거 병사들과 다르고 군에 대한 기대도 높아져서다. 신세대 병사들은 개성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나약함도 드러내고 있다. 군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사병’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군내 관심사병은 전체 병력의 10%에 육박한다. A급(특별관리대상)과 B급(중점관리대상) 관심병사만 2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신세대 병사들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내린 결정과 명령에는 승복한다. 계급을 앞세우거나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강요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자기계발의욕도 강하다. 올해 군 복무 중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병사들은 전반기에만 6439명에 달한다. 정보처리, 지게차 운전, 한식조리 등 자격증 종류도 다양하다. 2012년 한국리서치가 병영문화 선진화를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병사들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으로 자격증, 자기공부를 위한 개인학습시간 보장과 학업 및 자기계발 여건 확대를 꼽기도 했다.

군은 1990년대부터 새로운 군인복무규율과 국군병영생활규정을 만드는 등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2005년 경기도 연천 530 최전방 관측초소(GP)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는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를 꾸려 병영문화 개선 비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GOP 총기사건에서 보듯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군 출신인 국회 국방위원회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홈페이지에 “원점에서부터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만 마련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한 장관은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이란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자녀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지휘관회의에서도 한 장관은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 조성을 국방운영 4대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한 장관의 바람이 속히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