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권태신] 기업부실 정리할 새 시장제도 마련을

입력 2014-07-17 02:25

최근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기업의 부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업체 비중은 2013년 29.1%로 2012년(28.8%)에 비해 상승하였다. 중소기업도 2012년 36.7%에서 2013년 39.5%로 크게 상승하였다.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말 10.2%에서 2012년 말 15.0%로 급속 상승하였고,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더 높다. 기업경쟁력 약화와 함께 기업의 재무위험이 도산위험으로 확대되고 있다. STX, 동양, 동부, 팬택 등 대기업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많은 중소기업들도 오래전부터 부실이 누적되고 있는 상태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통합도산법을 통한 법정관리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통한 워크아웃에 의해 이루어진다. 통합도산법은 기업청산보다는 회생을 도모하고, 기촉법에 의한 워크아웃도 기업회생과 경영개선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미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자본시장을 통해 부실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정리되고 있다. 시장에서 자율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다. 법·제도적으로 부실기업은 우리나라의 통합도산법과 같이 연방파산법에 따라 청산되거나 재건 절차를 밟는다.

우리나라는 아직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나 부실채권 시장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환위기 때 정부나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추진하였고,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당국이 직간접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개입하여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특정 산업·기업 구조조정 유도 등 관치의 문제가 뒤따른다. 기업채무를 출자전환하면서 국책 산업은행은 다수의 계열회사를 소유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금융감독위원회를 컨트롤타워로 한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 덕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최근 부실기업의 채권관계가 매우 다양해졌다. 채권 보유자가 금융기관과 함께 일반 투자자로 구성된 상황에서 채권금융기관 간 합의만을 통해 워크아웃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였다. 금융기관 대출보다는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등 기업 자본조달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채권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 방식 또한 새로운 모습을 갖춰야 한다.

기업부실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제도의 모색이 필요하다. 우선 채권금융기관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실채권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실채권 시장 등 전문시장의 발달은 채권자가 투자자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잠재적 가치, 지속적 가치를 제고하는 전략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자본시장 내에서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사모투자펀드의 활동 영역을 넓혀 줄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사모투자펀드 그 자체를 규제하는 방식에서 운용업자 중심의 통합적 관리시스템으로 변경하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칸막이 규제는 펀드 운용자가 아닌 펀드 자체를 규제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상황 변화에 유연성 있게 대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마지막으로 구조조정 기업에 대해서는 조세 측면에서의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세제가 기업 구조조정의 장애요소로 작동하면 안 된다. 조세특례제한법상의 기업 구조조정세제 관련 조항들 중 한시적 기한을 가진 조항들은 법인세법으로 이관되어 영구 조항으로 적용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또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비상장기업을 인수한 과점주주에게까지 간주취득세를 감면해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