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순애 (9) “믿음의 남편 만들어주세요” 매일 밤 가정예배

입력 2014-07-17 02:53
박순애 전도사가 인천순복음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 남편 신승균 전도사가 트로트로 찬양을 부르고 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나는 행복한 가정, 웃음이 피어나는 가정을 꿈꿨다. 목회자와 결혼해 평생 하나님 일을 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님의 종을 만나게 해달라고 배우자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돈 때문에 폭력을 일삼던 남편, 그렇게 이성을 잃은 남편의 그 눈빛. 어디서 본 듯했다. 어머니와 나를 무참히 때렸던 내 아버지였다. 어머니처럼 사는 게 너무나 싫었는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바꾸실 줄 알았는데, 남편을 바꿔보겠다고 눈이 짓무르도록 기도했는데 내 인생은 구룡포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내 삶의 죽음과 같았던 10년의 시간들, 한 남자를 위해 죽도록 기도하며 두 아들을 목숨 바쳐 사랑으로 키우며 눈물로 엎드린 그 자리에는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고, 이를 악물고 옥상 아래로 몸을 내던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룡포 바닷가에서 나를 살리신 하나님은 한 번 더 나를 붙잡았다. 엄청난 빗줄기를 뚫고 내 심장에 꽂힌 절규,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였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두 아이를 본 순간,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는 상처 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떠나지 않겠다고 말해놓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일 밤 10시 눈물의 가정예배를 드렸다. 다시 힘을 냈다. 웃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두 아들과 행복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지냈던 남편이 불쑥 들어왔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남편은 갑자기 엎드려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줘”라며 엉엉 울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상태였다. 냉정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내가 키울 겁니다. 당신은 아버지 노릇 할 자격 없습니다. 이쯤에서 끝냅시다.” 더 이상 남편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전과는 좀 달랐다. 며칠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더니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는 나를 따라나섰다.

남편은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했다. 그러면서 새벽예배 때 경험한 일들을 고백했다. 성전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눈을 뜨라”는 음성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눈앞에 대형 스크린이 펼쳐지면서 지난날 도루코 시절부터 시작된 수많은 죄악들이 영화처럼 지나갔다는 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그대로 성전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단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만하세요. 저 같은 놈 데려가시지. 왜 살려 두셨어요?” 그 순간 남편은 똑똑히 들었다고 한다. “네가 산 것은 네 아내의 눈물의 기도 때문이니라.” 남편은 우리 가족에게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했다. 자기 속에 수십년간 죄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눈물로 쏟아내는 회개의 시간을 새벽마다 가졌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깊은 눈물을 흘릴수록 혼탁한 영은 씻겨진다. 회개는 영혼을 맑게 하는 작업이다. 남편은 그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머리를 빡빡 밀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을 돕고 싶다며 가끔 돈을 달라고 떼를 썼다. 평소 노래를 잘 부르던 남편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찬양전도사로 사역했다. 모든 찬양을 트로트로 부르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세상 노래를 너무도 많이 불러봤던 그는 ‘뽕짝 전도사’로 유명해졌다. 남편은 지금도 자신의 인생의 무대에서 헛되이 살아온 것을 끊임없이 회개한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히 6:14) 이 엄청난 축복의 메시지 다음 구절에 나오는 말씀은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이다. 축복은 인내하지 않고는 받을 수 없다. 호롱불 밑에서 빌린 책으로 밤을 새우며 인생의 인내를 보석처럼 켜내며 살아왔더니 오늘날 하나님은 ‘남편의 변화’라는 최고의 선물로 보답하셨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