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이혜인(가명·34)씨는 주위에서 “이제 둘째 낳아야지”란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럴 계획이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이씨의 월 수입을 합하면 800만원이 넘는다. 세 살 아들은 월 150만원에 조선족 입주 도우미가 봐주고 있다.
이씨가 둘째를 낳지 않기로 한 건 첫 아이 키우며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견딜 자신이 없어서다. 부부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야근이 잦다. 아이가 가장 오래 대하는 사람은 함께 사는 조선족 할머니다. 출근 전에 잠든 아이 얼굴 잠깐 보고, 퇴근해선 졸음에 겨운 아이와 잠시 놀아주는 게 전부다. 아이에게 늘 미안하다.
이씨는 15일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수시로 갈등하며 버텨온 3년을 되풀이할 자신이 없다. 아이를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아이를 한 명만 둔 ‘직장맘’ 10명 중 7명은 둘째를 낳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육아정책연구소 이정원·유해미 부연구위원이 최근 ‘1명의 영유아 자녀를 둔 취업모의 후속 출산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조사한 결과다. ‘둘째를 낳겠느냐’는 질문에 조사 대상 직장맘 259명 중 67.6%(175명)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소득이 높을수록 ‘둘째 계획이 없다’는 비율도 높아졌다. 부부 소득이 월 300만원 미만인 경우 ‘둘째 안 낳겠다’는 답변이 53.8%였는데 월 500만원 이상인 응답자의 73.9%는 둘째 계획이 없다고 했다. 양육비 부담이 출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론 고소득층이 오히려 둘째 낳기를 더 꺼린다는 것이다.
직장맘들이 꼽은 육아의 최대 난관은 이씨처럼 ‘일 때문에 어린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으로 조사됐다. ‘매우 어렵다’를 5점, ‘전혀 어렵지 않다’를 0점으로 측정하니 3.6점이 나왔다. ‘출퇴근시간에 맞춰 어린 자녀를 기관이나 대리 양육자에게 맡기는 데서 겪는 어려움’도 3.4점으로 높게 나왔다. 아이를 충분히 돌봐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에 대한 갈등이 직장맘 둘째 출산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정부는 육아휴직 장려,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 각종 저출산 대책과 여성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2006년 이후 8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투입된 예산은 53조원이나 된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1.19명, 여성 취업률은 49.5%였다. 2003년 출산율 1.18명, 여성 취업률 49.0%에서 10년 동안 제자리걸음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을 높이려면 둘째 이후 출산이 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원 부연구위원은 “자녀 한 명을 둔 직장맘이 과연 아이를 더 낳을 거냐가 출산율 제고의 관건인데 정부 정책은 셋째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정책 효과를 높이려면 둘째부터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고소득 직장맘 70% 이상 “둘째 안 낳겠다”
입력 2014-07-1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