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살 송씨, 장부 보여주며 구의원에 떡값 수수 권유”

입력 2014-07-16 04:02
"시간 나면 이따 사무실로 한번 오소."

2005년 추석을 앞둔 9월 초 당시 서울 강서구의회 의원이던 A씨는 지역 재력가 송모(67)씨의 전화를 받았다. 김형식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의 피해자인 그 사람이다. 사무실로 찾아간 A씨에게 송씨는 "명절 떡값이나 하라"며 3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A씨가 주저하자 송씨가 장부를 하나 펼쳐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금전출납부인 '매일기록부'였다. 그는 장부를 보여주면서 "여기 적혀 있는 이 사람들도 다 받았는데 왜 자네만 망설이나"라며 핀잔을 줬다. A씨는 재차 거절했고 송씨는 "앞으로 자네와는 대화가 안 되겠네"라고 하더니 등을 돌렸다.

A씨는 15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이런 경험을 털어놓으며 "송씨 주장처럼 실제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의회 동료나 지역에서 함께 생활해온 사람들 이름이 여럿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송씨는 정관계 로비 대상자들에게 청탁과 함께 돈을 건네는 방법 중 하나로 매일기록부를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로부터 금품 제의를 받았던 복수의 인사들에 따르면 그가 한꺼번에 거액을 건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수십만원씩 주면서 '거래'를 트곤 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점차 액수를 높이는 식이다. 경계하는 이들에겐 "다른 사람도 다 받았다"고 설득하는 수단으로 매일기록부를 보여줬다.

이렇다 보니 매일기록부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비 대상 인사를 설득하기 위해 매일기록부에 유력 인사나 고위 공무원 이름을 허위로 기재했을 수도 있다. 송씨와 사업을 같이했던 한 인사는 "송씨로부터 '매일기록부에 전직 장관, 법원장 등 고위직 인사도 적혀 있다'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