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예쁜 여자들

입력 2014-07-16 16:48

이렇게 말해도 될까. ‘열정만이 인간존재의 표식이다’라고. 오늘의 예쁜 여자는 바로 그런 ‘존재의 표식’을 지닌 여자라고.

예쁜 여자 1:

그 여자는 대학을 나온 도시 여자다. 결혼하자 시골로 갔다. 시골이라고 해도 도시 근교의 시골이 아니라 심심산골의 오지였다. 그 여자는 2년간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다가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농부들과 연계해 ‘예쁜 농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유기농 제철 반찬을 배달하는 일. 대학을 나온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나라의 묘한 도시와 농촌의 이분법적 세상, 1세기도 더 지났건만 아직도 근대 ‘분리주의’의 삶들처럼 도시와 농촌, 너와 나 등이 서로 딴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여자들, 도시의 여자인 그의 열정은 이제 샘솟는다. 어디엔가 숨어있는 자기의 ‘예쁜 샘물’을 찾아낸 것이다.

예쁜 여자 2:

한 여자가 멋있게 다이빙을 하며 내가 수영하고 있던 ‘라인’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쉬지 않고 ‘라인’을 돌았다. 그 여자는 물 속에서 온갖 묘기를 하기도 하였다. 물구나무도 섰다. 수영장 가장자리로 가서 잠시 서 있는데 그 수영 잘하는 여자가 옆에 와서 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관심 없는 체하며 그 ‘수영 잘하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기엔 아주 주름살이 깊게 파인 한 할머니가 서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그 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보았던 할머니는 이미 거기 보이지 않았다. 푸른 수영모를 쓴 한 여자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그 푸른 수영모의 여자가 수영장을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수영장을 나왔다. 샤워실로 얼른 들어갔다. 그런데 샤워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푸른 수영모를 쓴 그 여자는 어디 갔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샤워실엔 그 할머니와 나 밖엔 없었다. 뭔가, 좀 홀린 기분이었다. 탈의실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였다. “저렇게 화장품 통을 마구 버리고 가다니… 쯧쯧, 제 살림은 어찌 하노?”

아주 우렁찬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저 할머니가 그 여자였구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잿빛 저고리의 고름이 바람에 잠시 펄럭였다. 삶의 수레 위에서 펄럭이는 열정의 ‘예쁜’ 깃발이 되어, 존재의 표식이 되어.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