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군인, 검사, 정치인이 즐겼던 술이다. 권위주의 시절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예전엔 맥주에다 양주를 섞는 ‘양폭’이 유행했으나 지금은 맥주와 소주를 혼합한 ‘소폭’이 더 인기다. 과음을 꺼리는 데다 눈먼 돈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폭탄주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잡는 술이다. 이로 인해 인생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폭탄주가 처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 때다. 육군 수뇌부가 서울 회현동 요정 ‘회림’에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던 군 장성이 국회의원을 폭행했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고, 정동호 육참차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89년 9월에는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 국정감사장에서 저녁식사 때 폭탄주를 마신 몇몇 의원이 법무부 간부들에게 욕을 하거나 답변을 중단시키는 등 추태를 부렸다.
95년 8월에는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시중에 전직 대통령 비자금 4000억원 얘기가 파다하다”고 특급 정보를 흘리고 말았다. 한참 뒤 사실로 밝혀졌지만 서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거센 항의를 견디지 못하고 사퇴해야 했다. 99년 6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점심 때 폭탄주를 마시고 기자들과 만나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검찰)가 유도한 것”이라고 천기를 누설했다. 이 한마디로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인책 사퇴했으며, 진 부장도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김태환 의원의 골프장 경비원 폭행사건, 곽성문 의원의 골프장 맥주병 투척사건, 주성영 의원의 대구 술자리 폭언,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등은 모두 폭탄주가 원인이었다. 이런 사건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미지가 크게 구겨졌고, 최 의원은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정회 중 폭탄주를 마신 것으로 보도돼 혼쭐이 났다. 지난 10일 자신의 위증 문제로 청문회가 공회전할 때 문체부 간부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하며 폭탄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자신의 두 차례 음주운전 전력에 대해 머리 조아리며 사과한 사람이 몇 시간을 못 참고 또 폭탄주를 마셨다니 이해가 안 된다. 아마 음주 운전한 그날도 폭탄주를 마셨을 게다. 정 후보자는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폭탄주만은 멀리해야겠다. 폭탄주 추방운동이라도 펼치면 모를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폭탄주
입력 2014-07-16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