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지혜의 숲’을 위한 지혜

입력 2014-07-16 02:34

책 읽는 공간을 놓고 이토록 상반된 평가를 들은 기억이 없다. 신개념 도서관을 표방하며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에 건립된 ‘지혜의 숲’ 이야기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나라에서 도서관을 지으면 그 자체로 칭찬받는 것이 상례인데, 비판의 화살이 곳곳에서 날아드는 연유는 무엇일까.

지혜의 숲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 20여만권의 책을 전시하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1176평 공간을 일컫는다. 지식인 학자 연구자 저술가의 장서와 출판도시에 입주한 출판사의 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앞으로 100만권을 채울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은 세 섹터로 나뉘어 있는데, 1섹터는 개인이나 단체가 기증한 책, 2섹터는 29개 출판사가 기증한 책, 3섹터는 종합관으로 꾸몄다. 3섹터는 24시간 문을 열며, 사서(司書) 없이 ‘권독사’라는 자원봉사가가 상주한다. 이 정도면 신개념인가.

지적 허영에 봉사하는 스펙터클

주류 언론은 대부분 찬사를 보냈다. 도서관의 진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신선한 접근으로 비칠 것이다. 이에 비해 일부는 조롱 수준의 비판을 하고 있다. “아무런 분류체계 없이 책만 쌓아놓은 종이무덤” “거대한 책 납골당” “이런 데에 소중한 국민 세금을 쓰다니” “국내 최대의 커피숍”이라는 식이다. 도서관 근본주의 입장이라고 할 만하다.

논란의 실체가 궁금해 먼 길을 찾아갔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후다닥 들어선 지혜의 숲은 하나의 스펙터클로 다가섰다. 16단 서가가 8m 높이로 솟은 장대한 공간! 국고 7억원 가운데 5억원을 서가 제작에 쏟아 부은 지적 허영이 물씬 묻어났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권독사가 찾아왔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신개념이라는 게 거창하지 않고 기존 도서관의 틀을 약간 벗어난다는 것이지요. ‘공동의 서재’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거예요.”

맞다. 이름부터 문제였다. 책 제목달기가 일상인 출판인들은 작명의 달인이다.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를 만들어 놓고 ‘북시티’라고 부른다. 숙박시설 ‘지지향(紙之鄕)’은 지식연수원으로 일컫는다. 지혜의 숲 역시 ‘열린 도서관, 신개념 도서관’으로 수식하니 나머지 도서관은 ‘닫힌’ 또는 ‘구개념’으로 분류되고 만다. 책을 내는 출판인들이 책을 관리하는 사서 하나 고용하지 않고 도서관 흉내를 낸다는 비난이 여기서 출발한다.

매력도 있었다. 우호적으로 보자면 단순한 열람보다는 적극적 독서행위를 권하는 콘셉트였다. 책 속에 남긴 기증자의 낙서를 보며 지적 탐험의 궤적을 찾는다든지, 한 출판사의 서가에서 책의 변천사를 읽는 식이다. 넉넉한 공간의 여유도 좋았다. 옆 사람의 땀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구립도서관을 떠올려 보라.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으면 일어서고 싶지 않았고, 기하학적으로 꾸며진 책상과 의자도 정신성을 고양하는 소품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독서의 공공성 위해 방향 틀어야

이제 지혜로운 대안을 찾을 때다. 세금이 들어갔으면 출판인들의 사적 취향을 넘어 독서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싶으면 자료의 데이터베이스와 관외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 권독사에서 ‘독사’라는 부정적 이름이 추출되니 ‘권독인’ 정도로 고치면 어떨까. 유지비용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사서와 권독인의 공존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과도한 치장도 손을 보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손이 닿지 않는 서가는 의미가 없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복본(複本) 찾을 일이 없으니 책을 주제로 한 그림이나 사진을 거는 게 낫겠다. 운영 방식도 그렇다. 주민도 없고, 대중교통도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여는 것이 효율적이고 문화적일까. 도서관이 무슨 뼈다귀해장국집도 아닌 바에야.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