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필요 있나요? 우리는 문화 바캉스!

입력 2014-07-16 02:15 수정 2014-07-16 11:25
숨 막히게 더운 대도시의 낮과 어둠이 내린 고궁의 밤은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7~8월 서울시내 여러 고궁들이 야간에 문을 열고 시민들을 초대한다. 사진은 지난해 경복궁 야간 개방 때 환하게 조명을 받은 근정전의 모습이다. 문화재청 제공
더위가 혹독해질수록 피서 생각이 간절해진다. 멀리 떠나고 싶지만 시간상 형편상 여의치 않다면 도심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낯선 경치 대신 문화를 탑재하면 도심 속 피서도 그럴 듯해진다. 고즈넉한 문화의 공간을 찾아 느릿느릿 걸으며 한나절을 보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씻기는 기분이 든다. 서울이란 대도시는 구석구석 보석 같은 문화공간을 숨겨놓고 있다.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서울 도심 속 문화피서지'를 찾아보았다.

박노수미술관과 서촌 구경

지난 해 9월 문을 연 박노수미술관은 종로구 수성동 계곡 아래 옥인동 주택가에 숨어있다. 빼꼼히 열린 대문을 들어서면 외국 그림엽서에서나 나올법한 2층 건물이 나타난다. 지난 해 2월 작고한 한국화가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이 40여년간 살던 집인데, 종로구청이 기증을 받아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1939년 건축된 집 안으로 들어가면 박 화백의 그림과 고가구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집도 집이지만 마당이 볼만하다. 화가가 평생 수집한 수석과 석물들이 마당 곳곳에 늘어 서 있다. 뒷마당에서는 대숲을 따라 동산에 오를 수 있다.

박노수미술관을 본 뒤 경복궁역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서촌 구경을 해도 좋다. 골목마다 작고 독특한 가게와 갤러리, 전통시장들이 툭툭 튀어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경복궁역 근처 대림미술관과 사진 갤러리 류가헌은 일부러라도 찾아가볼만한 곳이다.

땡스북스와 동네서점의 미래

귀여운 노란색 간판에 감각적인 작명, 땡스북스는 홍대 앞 상상마당 인근에 자리 잡은 서점이다. 2011년 3월 문을 열었으니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지만 동네서점의 진화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서점이다.

디자이너인 서점 주인은 자신의 취향과 관심, 시각을 통해 책을 선별하고 진열한다. 디자인과 건축, 예술 관련 서적이 많고, 여행서, 국내외 문학과 잡지, 만화 등이 주종을 이룬다. 서점 한 켠에서는 커피를 팔고 2층에서는 전시회도 열린다. 진열된 책뿐만 아니라 공간 구성, 가구, 음악에 이르기까지 주인의 취향이 묻어난다.

땡스북스를 나와 홍대 정문을 지나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하나의 독특한 동네서점 유어마인드에 도착한다.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국내외 소규모 출판물들을 소개하는 곳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다세대주택 5층을 근사한 서점으로 꾸며 놓았다.

국박 찍고 리움

용산에 있는 국박(국립중앙박물관)이 친근하고 광활하다면 한남동에 있는 리움은 섬세하고 고고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4㎞. 사이에 이태원이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설렁설렁 걸어가면서 이국적인 거리를 구경해도 즐겁다.

국박은 언제 가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올 여름에는 신라시대 유물 전시와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명화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야외 열린마당에서는 무료 공연도 준비돼 있다.

리움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음 달 야심 찬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 소장품을 한 곳에 모은 ‘교감’ 전이 그것인데, 올해 가장 주목할만한 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전시 준비를 위해 8월 4일까지 휴관한다.

경동교회, 국립극장, 그리고 남산의 소나무들

장충동 일대는 건축기행의 명소다. 장충체육관, 자유센터, 타워호텔, 국립국장 등 한국 근대화 시기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집중돼 있고, 한국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경동교회와 웰콤시티도 이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웰콤시티는 일반인 접근이 안 되지만 경동교회는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1981년 완공된 경동교회는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붉은 벽돌을 주소재로 했고, 계단을 통해 뒤쪽으로 돌아가야 입구가 나오는 구조가 독특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고대의 예배당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데, 정면에 걸린 대형 십자가에 빛이 떨어져 홀로 빛난다. 운이 좋으면 이 교회의 자랑 파이프 오르간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경동교회를 지나 남산으로 방향을 정해 고개를 오르다보면 국립극장이 나타난다. 널찍한 공간 여기저기 땀을 식히고 다리쉼을 할 곳이 많다. 저녁 시간에 도착했다면 매년 여름 밤 국립극장이 선보이는 국악공연 ‘여우락 페스티벌’(26일까지)을 즐겨도 좋다.

내친 김에 남산에 올라보자. 정상까지 올라서 서울시내 구경을 해도 좋고, 중간에 소나무 숲에 들어가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어도 좋다. 서울 도심에서 남산만큼 소나무 숲이 좋은 곳도 드물다.

DDP에서 도민준과 천송이를 만나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지난 3월 문을 연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올 해 가장 ‘핫’한 건축물이다. 좋다 나쁘다 논란이 그치지 않고, 간송미술관 전시회로 화제를 모았다.

올 여름 여기에 도민준과 천송이가 뜬다. 아시아를 사로잡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세트장이 들어선 것이다. 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와 도민준(김수현 분)이 살던 집이 고스란히 옮겨졌고, 두 사람이 극 중에서 사용한 물품 등이 전시됐다(다음달 15일까지 오전 10시∼오후 10시).

DDP 근처 광희문에서 출발해 대학로 인근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서울 성곽길 낙산코스(3.6㎞)는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DDP의 인공미와는 또 다른, 서울의 오래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녁 8시 한강 다리 밑에서 영화 한 편

여름은 밤이 좋다. 후텁지근한 낮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밀려오면 공기는 시원해지고 어디든 나서고 싶어진다. 저녁 8시, 집 근처 한강 다리 밑으로 가보자. 영화가 기다린다.

한강 다리 밑에서 영화를 보는 ‘다리 밑 영화제’는 지난해 시작돼 호평을 받았다. 한남대교나 청담대교에서는 한 번 상영에 10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올해는 더 커졌다. 방화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동작대교, 한남대교, 청담대교 외에 원효대교와 천호대교가 추가돼 총 8곳에서 영화제가 진행된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신비의 가수 슈가맨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 등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7월 25일부터 8월 16일까지 매주 금·토 저녁 8시에 무료로 상영된다.

여름 밤, 고궁나들이

여름철 고궁 안은 도심 빌딩가보다 기온이 3∼4도 낮다고 한다.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인파마저 한적해지는 밤이라면 공기는 더 시원해진다.

경복궁은 30일부터 8월 11일까지 야간 개방을 실시하는데, 광화문, 흥례문, 근정전, 경회루 권역을 개방한다. 관람 시간은 오후 7∼10시. 야간 개방은 인원 제한이 있고,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예약해야 한다. 경복궁 야간 개방 기간에 국립고궁박물관도 오후 10시까지 무료 개방한다.

덕수궁은 야간에 상시 개방한다. 9월 25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은 8월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9시 야간 개방을 한다.

정리=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