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英 ‘대체부품’ 계약땐 보험료 깎아줘

입력 2014-07-15 02:05
스페인 아빌라에 있는 자동차 기술연구소 세스비맙의 전손차량처리센터에서 직원이 폐차를 분해하고 있다. 여기서 분리된 중고부품 중 일부는 재가공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손해보험협회 제공

수입차는 부품 값이 유난히 비싸서 수리비가 많이 나온다. 수입차 수리비 중 부품 값으로 지급되는 보험금은 건당 평균 200만7000원으로 국산차(43만1000원)의 4.7배에 달한다. 완성차 제조업체가 공급하는 순정(OEM)부품만 쓰지 말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검증된 대체(Non-OEM)부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수리비와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 이에 국내에선 내년 1월부터 대체부품 성능·품질인증제가 시행된다.

이 제도가 정착돼 대체부품 사용이 활성화되려면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버크셔에 위치한 ‘태참(Thatcham)’을 찾아갔다. 태참은 영국 자동차보험업계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 연구센터로 2004년부터 대체부품 품질인증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인증하는 부품은 1060종에 달한다. 태참의 이안 커티스 매니저(제품 평가 서비스 담당)는 “품질인증제는 보험사와 정비업체, 소비자에게 대체부품에 대한 신뢰를 준다”면서 “우수한 대체부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면 순정부품의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태참에 따르면 영국에서 보험 처리로 지출되는 부품 비용이 연간 8억1700만 파운드(1조4243억원)인데, 대체부품이 전면 도입될 경우 3억1800만 파운드(5543억원) 정도가 절감된다. 영국에선 사고 발생 시 대체부품을 사용하겠다고 계약한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할인해 주고 있다.

태참의 레슬리 업햄 디렉터(마케팅 담당 임원)는 “품질인증제 시행(2004년) 이전엔 대체부품이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태참이 생긴 이후엔 대체부품과 순정부품의 질적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스페인 최대 손해보험사 마프레가 운영하는 자동차 기술연구소 ‘세스비맙(Cesvimap)’은 2003년부터 정부 승인하에 폐차 부품을 재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스페인 아빌라에 위치한 연구소 내 전손차량(ELV)처리센터는 연간 1만5000대의 폐차를 분해하고 쓸만한 부품을 재가공해 판매한다.

세스비맙의 이그나시오 후아레스 연구소장은 “재활용 부품은 순정부품보다 30%가량 저렴하다”며 “이 사업은 친환경적이고 소비자가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에서 재활용 부품은 안전과 관련 없는 소모성 부품에 국한되며, 보험 처리가 아닌 개인적 수리에 사용된다.

10년 전부터 대체부품 품질인증과 재활용 부품 인증·판매를 해온 영국과 스페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첫걸음도 못 뗀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대체부품 성능·품질인증제 시행주체를 민간 인증기관과 시험기관으로 이원화한다는 시행규칙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시험기관에서 대체부품을 테스트한 결과가 나오면 인증기관에서 일정 기준에 따라 인증마크 부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버크셔(영국)·아빌라(스페인)=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