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출신지 바뀐 국정원 간부

입력 2014-07-15 02:24

20년 넘게 국가정보원에서 근무 중인 A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6월 ‘4급 승진인사’에서 1순위 승진 대상자로 뽑히고서도 탈락했다. 출신지역이 문제였다. 국정원 인사기록카드에는 A씨의 출생지가 경북 영일로 적혀 있었다. 지역 편중인사 문제로 국회에서 지적을 받았던 국정원은 영남 출신인 A씨를 승진에서 배제했다. 2순위였던 호남 출신 대상자가 대신 승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A씨는 원래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충북 증평에서 자랐다. A씨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출생해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충북 증평에서 자랐다. A씨의 당시 부서장은 14일 “부서 사람들은 A씨를 충북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의 호적등본에는 출생지와 원적이 경북 영일군으로, 본적 및 주소는 충북 괴산군으로 적혀 있다.

6개월 후인 2007년 12월 다시 돌아온 4급 승진인사에서 A씨의 출신 지역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승진인사 직전에 ‘승진자를 영남 출신은 40% 이하로, 호남 출신은 20% 이상으로 맞추라’는 지침을 내렸다. 1순위 승진대상자 46명을 분류하니 영남이 60.9%, 호남이 8.6%였다. 당시 국정원 인사팀장 B씨는 김 전 원장에게 “A씨의 실제 출생지는 전남”이라고 보고했다. 경북으로 분류됐던 A씨를 전남으로 분류하면 호남 출신 승진 대상자 비율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김 전 원장은 A씨의 인사자료상 출생지를 전남으로 바꾸라고 지시했고, A씨는 호남 출신으로 분류돼 4급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승진 직후 국정원 기획조정실에서 ‘인사기록카드를 함부로 변경하면 곤란하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전남 해남으로 수정됐던 A씨의 출생지는 다시 경북 영일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불똥은 B씨에게 튀었다. B씨는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인 2009년 A씨의 인사자료를 임의로 수정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임됐다. B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해임이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해임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실제 태어난 곳은 전남이라는 사실이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출생지를 변경한 점을 고려할 때 해임처분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A씨 경우처럼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출신지 논란은 종종 일어난다. 2008년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됐던 유인촌씨는 그동안 고향으로 알려졌던 서울 대신 전북 전주를 출신지로 내세워 논란이 됐다. 장관들 중 호남 출신 비율을 높이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공식적인 출신지는 서울이지만, 여권 내에서는 부모님 고향 등을 고려해 ‘호남 출신 인사’로 분류됐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