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1·2세대 표적항암제 덕 연간 사망률 1∼2%로 뚝

입력 2014-07-15 02:58

1970년 이후 약 20여년간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유일한 완치 요법으로 여겨지던 조혈모세포 이식은 인류 표적항암제 글리벡의 등장으로 인해 그 위치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글리벡은 의료보험 급여가 적용돼 값싸게 처방된다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경구로 복용해 치료가 간편하고 백혈병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해 치료효과가 높다. 이러한 장점이 알려지자 환자들은 이식 대신 글리벡 치료를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글리벡만으로 완치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학계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차 치료제로 글리벡을 선택할 것인지, 전통적인 완치 요법인 이식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의학계에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글리벡은 평생 복용해야 하며 완치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모든 환자에게서 내성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2003년 초에 미국 찰스 소이어 교수팀에 의해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글리벡 내성 발생에 대한 연구 결과는 표적항암제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이식을 옹호하던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표적항암제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사들은 글리벡 내성의 원인이 여전히 글리벡이 결합하는 ATP 활성 부위의 구조적인 변화만을 일으키는 ‘점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봤다. 이것은 화학 구조를 바꾼 새로운 표적항암제의 개발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이 시기에 글리벡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2세대 표적항암제의 개발이 시작됐다. 일양약품의 라도티닙(슈펙트)의 전임상연구가 2003년부터 시작됐고, 전임상연구를 마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사(BMS)와 노바티스사는 2004년 초부터 각각 다사티닙(스프라이셀)과 닐로티닙(타시그나)의 1상 임상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필자는 2001년 시판 승인 후에나 동정적 치료 프로그램으로 글리벡을 사용하게 된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2세대 신약의 초기 임상연구 참여를 위해 2004년 12월 미국혈액학회 기간 중 연구자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샌디에이고로 급히 날아갔다. 정식 임상연구자 대신 옵서버로만 회의에 참여해 제약사 대표들을 만나 대한민국의 참여 필요성을 설명했으나 노바티스사의 연구 책임자는 이미 연구자를 결정했다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결국 필자가 이미 경쟁사인 BMS사의 스프라이셀 2상 임상연구자로 선정돼 노바티스사의 타시그나 후속 연구가 필요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뒤늦게 필자를 연구자로 추가 선정할 것을 결정하고 추가로 연구자 명단을 발표했다. 마침내 2005년 3월 스프라이셀의 2상 임상연구가 세계 최초로 성모병원과 미국의 엠디앤더슨 암센터에서 동시에 시작됐고, 같은 해 9월부터 타시그나의 2상 임상연구도 시작돼 글리벡 치료에 실패하고 이식을 시행할 수 없었던 국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었다. 2005년부터 2006년간의 2세대 표적항암제 2상 국제임상연구에 약 100여명의 국내 환자가 참여하여 환자 등록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백혈병 임상연구의 우수성과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돼 후속 임상연구에는 우선적으로 초대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표적항암제의 등장은 전 세계적으로 조혈모세포 이식의 필요성을 크게 줄였다. 필자의 병원에서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매년 50건의 이식을 시행했으나 2001년을 기점으로 이식 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지난해에는 표적항암제 치료 실패 환자 5명에게만 2차 또는 3차 치료로 이식을 시행했다. 성인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표적항암제의 등장으로 연간 사망률이 1∼2% 정도로 크게 줄어 조만간 가장 높은 유병률을 가진 백혈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

김동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