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도시락 싸서 병원 가야 하는 암환자의 이중고

입력 2014-07-15 02:55

동물성 지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맵고 짠 음식은 암환자에게 해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외식을 하며 접하는 모든 음식들은 암환자의 식단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대형병원에 입점해 있는 음식점들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암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환자의 몸에 좋은 음식이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나쁠 일이 없는데도 하나같이 대형병원의 푸드코트는 백화점의 푸드코트를 닮아 간다. 유기농 재료를 이용하고 원산지를 꼼꼼히 따져 암환자를 생각했다는 슬로건은 어느 곳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최근 항암치료를 시작한 박민술(48)씨는 병원에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박씨는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면 거의 반나절 병원에서 생활한다. 오전에 채혈하고 종양내과 외래 진료를 보고 오후에 항암주사를 맞는다. 중간에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는데 병원 푸드코트를 가 보면 육개장, 자장면, 돈가스, 칼국수, 맵고 짠 탕 종류뿐이다. 암환자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고 기껏해야 죽이다. 자식 걱정이 되는 칠십이 넘은 우리 어머니께서 직접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오셔서 내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신다. 어머니께 죄송하다. 암환자가 된 자식은 불효자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암환자도 사정은 비슷했다. 남편의 간암 치료를 위해 서울과 지방을 오고간 지 2년 됐다는 김경희(52)씨는 “사서 먹는 밥은 믿을 수가 없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 왔다. 병원 밖이나 병원 안이나 음식이 똑같다. 병원 와서 외식하는 꼴이다. 환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서 손꼽히는 병원을 다니면서도 일일이 도시락을 준비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대형병원들은 환자 중심의 치료를 지향하며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미술요법, 웃음강연 등 확실히 암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병원을 찾은 모든 암환자들이 치료과정에서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병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대형병원들은 의료정보 제공에 치중한 나머지 지식정보센터, 교육센터라는 공간을 만들고서 정작 암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마음 놓고 도시락 하나 먹을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해놓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만나 본 암환자들 이야기의 결론은 같았다. 병원 가는 날이 기분 좋은 날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는 의료진이 있는 곳이 바로 병원이지만 아직 암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이 생각하는 병원은 몸 아프고 신경 쓸 곳 많은 곳이다. 대형병원이 치료의 공간을 넘어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은 건강한 밥을 제공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차가운 경제적 논리만 앞세워 음식점을 입점 시키기보다는 환자들에게 ‘집밥’다운 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병원의 진정성 있는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