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90년대 가요” 90년대 학번 스타PD들의 힘

입력 2014-07-15 02:27
90년대 학번 PD들을 통해 TV 속에서 90년대 음악이 재발견되고 있다.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를 통해 인기를 끌었다. ‘너에게’ 음반.
‘응사’의 한 장면. tvN 화면 캡처.
또 이적이 2007년 발표한 ‘같이 걸을까’는 2011년 2월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배경 음악으로 깔린 뒤 음원차트를 석권했다. ‘같이 걸을까’의 음반.
‘무한도전’의 한 장면. MBC 화면 캡처.
7월 첫째 주 싸이월드 음악 차트 96위는 전람회가 1994년에 내놓은 노래 ‘기억의 습작’이었다. 이 노래가 20여년이 지나서 음원차트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2년 영화 ‘건축학 개론’ OST로 쓰였을 때도, 같은 해 MBC ‘무한도전’이 ‘건축학 개론’을 패러디 했을 때도 이 노래는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올 초 끝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다시 한번 음원 차트에 진입했다. 이후 사람들이 꾸준히 이 노래를 찾으면서 차트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최근 음악시장엔 흥미 있는 속설이 돌고 있다. 1990년대 ‘흘러간’ 가요가 뜨는 배경에는 90년대 학번 스타 PD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음반업계 관계자는 13일 “최근 서점가에 ‘미디어셀러’가 대세라는 말이 있는데 흘러간 음악도 미디어에 노출되면 다시 음원 차트에 오르는 경향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스타PD가 연출한 프로그램의 경우, 거기서 사용된 음악이 차트 상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90년대 학번 스타 PD들이 선택한 90년대 음악=70년대 생, 90년대 학번은 문화적 다양성의 세례를 받은 세대다. 김태호 나영석 신원호 등 현재 방송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스타PD 3인방은 모두 94학번으로 90년대 문화 속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엔 90년대 감성이 묻어나는 음악들이 자주 쓰인다.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신 PD가 만든 두 드라마에 삽입된 곡들은 드라마 배경인 97년과 94년 당시 히트곡들이다. 김 PD가 연출하는 ‘무한도전’이 2012년 방송한 ‘무한대학교 개그동아리의 MT 가는 날’은 배경을 95년 5월로 잡았다. 듀스의 ‘나를 돌아봐’(1993), 김원준의 ‘언제나’(1993),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1990) 등이 잇따라 동원됐다. 지난 5월 나 PD 연출의 ‘꽃보다 할배-스페인 편’ 마지막 회엔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인 정지찬, 박원이 만든 팀 원모어찬스의 노래 ‘자유인’(2010)이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굳이 이들 3인방이 아니라도 90년대 학번들이 만드는 작품에서 90년대 음악이 배경음악이나 드라마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패닉의 ‘기다리다’(1995)는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아이유가 불러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연출자 이응복 PD. 제작자 배용준(키이스트 대주주), 프로듀서 박진영(JYP엔터테인먼트)까지 모두 72년생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90년대 감성 음악이 먹히는 이유=90년대 음악엔 아날로그 감성에 디지털 요소가 섞여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대로 갈리는 현실에서 두 세대를 다 이해할 수 있고, 두 세대를 함께 아우를 수 있다는 얘기다.

‘꽃보다 할배-스페인 편’ 마지막 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나 PD는 77세의 노인 신구가 일행들과 헤어져 홀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하는 장면을 구성할 때, 90년대 감성의 노래 ‘자유인’을 선택한다. 아주 오래된 배우와 오래된 음악이지만 이 장면은 한 편의 뮤직 비디오처럼 10·20대에게도 거리감 없이 전달됐다.

지난 2011년엔 2007년에 내놓은 이적의 ‘같이 걸을까’가 실시간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이 노래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무한도전 멤버들이 높이 90m 스키점프대 정상에 힘겹게 오르는 장면과 함께 나오면서 감동을 배가시켰다. 앞으로 대중문화계가 90년대 감성의 음악을 소환하는 경우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에서 30·40대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30·40대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추면서 대중문화의 핵심 소비층으로 등장하고 있다”면서 “미디어와 음악계가 이들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