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새정치연합이나 權후보나

입력 2014-07-14 02:23 수정 2014-07-14 02:38

내부 고발의 파문은 크다. 한 조직의 구성원이 그 조직의 비리나 부정부패 또는 불법·탈법을 폭로하는 것이기에 제삼자에게 상당한 신뢰감을 주기 마련이다.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한데, 조직 내부의 잘못을 까발리다니 저 주장은 필시 사실일거야’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 얘기다. 내부 고발자는 대체적으로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상당한 용기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내부 고발 자체는 공익적·이타적·윤리적 행위로 여겨진다. 반면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고자질이나 허위사실 유포로 귀결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해 4월,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의 축소·은폐를 지시했다는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폭로 역시 내부 고발 범주에 해당된다. 후폭풍은 컸다. 야당은 경찰과 국정원, 청와대까지 겨냥했다. 대선 불복 움직임마저 일었다.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들은 권 과장과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상황은 묘하게 흘렀다. 권 과장이 지목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검찰에 의해 기소됐으나 1심과 2심에서 연거푸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권 과장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야당은 검찰의 부실 수사 때문이라고 맞받아쳤지만, 권 과장에 대해 위증 혐의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달 30일 권 과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서이며, 7·30 재보선 출마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곧바로 상식에 반하는 일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권 전 과장을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확정한 것이다. 광주 민심을 고려해 최적의 후보를 전략공천했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설명이었다. 권 후보는 당당하게 공천장을 받아들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은폐라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 느닷없이 새정치연합의 입당 제의를 받아들인 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을 정상이라고 판단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권 후보 공천으로 권 후보 고발의 진정성은 실종됐다. ‘결국 금배지를 달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자임한 것 아니냐.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이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권 후보의 폭로가 정의를 위한 공익적·이타적 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이 다른 사람도 아닌 권 후보 본인과 새정치연합에 의해 입증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권 후보의 광주 광산을 공천 과정은 비밀 각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직서 제출(6월20일)→사직서 수리(6월30일)→광주 광산을에 공천 신청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서울 동작을 전략공천(7월3일)→권 후보 공천 확정(7월9일)→후보등록 시작(7월10일)의 수순을 복기하면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권 후보와의 교감 아래 공천을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특히 후보등록 개시 하루 전날 공천 사실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당내에서 반발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광주의 딸’로 통하는 권 후보에 대한 ‘보상공천’이라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근거이기도 하다.

권 후보 공천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좀 과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공무원들에게 새정치연합에 줄을 서면 권 후보처럼 공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셈 아닌가. 책임 있는 공당이 취할 도리가 아니다.

때문에 새정치연합은 두고두고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안철수 대표의 차기 대권 가도에도 장애물로 작용할 것 같다. 근시안적 공천이라는 당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권은희 국회의원 만들기’를 그토록 서두른 진짜 이유는 뭘까.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